386 정치인들의 투항

한때 386세대 정치인들은 ‘새정치’, ‘정치개혁’ 등의 미사여구를 달고 다녔다.

하지만 이들은 광주술판 이후 끝내 기존 정치권에 투항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일 실시된 16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경선에서 평소 주장해온 것과는 달리 자유투표(크로스보팅)를 하지 않은 것.

15대 국회 후반기 의장도 경선으로 선출됐으나 사실상 낙점인사를 투표라는 형식을 빌어 그 당위성을 마련해준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따라서 이번 만큼은 자유투표를 하자고 목소리를 높여왔고, 정치적 사안을 제외하고는 소신껏 투표하기로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투표결과, 이들은 철저히 당론에 따라 자신의 표를 던진 것이다.

386 정치인 대부분은 4.13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첫발을 내디뎠다.

15대 국회에 대한 정치불신이 깊었던 만큼 개혁욕구가 강했던 국민들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었다.

이런 탓인지 이들은 정치권 진입후 각종 개혁입법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고, 그 첫 시험대로 국회의장 경선을 꼽았었다.

광주술판 이후 당대내외적인 비판여론으로 활동폭이 좁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끝내 제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은 현실정치에 투항한 ‘슬픈 386’의 모습이었다.

“비판은 하되 개혁의 싹은 자르지 말아야 한다”며 광주술판조차 너그럽게 이해했던 사람들도 이런 태도에 대해서는 실망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기성 정치권에 물들어가는 듯한 모습은 물론 이처럼 80년대의 ‘저항정신’마저 무너져가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는 것이다.

이만섭신임의장은 “지난날 입법부의 어두웠던 그림자를 말끔히 씻어내자”고 말했다.

하지만 기대만큼 큰 실망을 안겨준 386정치인들을 보면 자꾸만 의문이 든다.

광주 민주화운동 20주년을 맞은 올해, 진정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꺾일지언정 휘어지지는 않겠다”며 결의를 다지던 80년대식 젊은피의 저항정신이 필요하다.

/이민봉기자 mblee@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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