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은 96년∼98년 3년동안 기밀비, 교제비, 사례금 등을 포함 총 9조9천898억원을 접대비로 썼다고 한다. 국세청이 지난 해 10월 국회에 제출한 국감자료에서 밝혀진 금액이다.
연도별로 보면 96년 2조9천656억원, 97년 3조4천988억원, 98년 3조5천254억원이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접대비 지출이 줄기는 커녕 오히려 증가했다. 관공서도 마찬가지다. 지방도청에 근무하는 모국장은 1년에 20∼30차례 서울에 올라와 예산지원이나 숙원사업 진척을 위한 협조를 구하기 위해 접대를 벌인다. 실정이 이러하니 각 지방자치단체는 막대한 접대비 지출을 위해 각 예산 항목에 은닉예산을 만든다.
접대에는 우리 경제 구조를 왜곡시킬 만큼 막대한 부담이 뒤따른다. 그래서 공무원 사회나 일반회사의 봉급체계에는 ‘업무추진비’ ‘기밀비’ ‘정보비’등 불투명한 비용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 사회는 접대를 ‘업무의 연장’이자 ‘생활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다. 세칭 ‘술상무’는 접대를 주업무로 하는 직장인이다. 특히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매일 밤 질펀하게 벌어지는 접대는 아직도 일과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필요악’으로 인식돼 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우리 같은 접대문화는 상상할 수 없다고 한다. 미국의 정치인이나 관리들은 20달러 이상의 선물을 받거나 식사를 접대받을 수 없도록 한 공직자윤리법을 철저히 지킨다는 것이다. 정·관·재계의 유착을 비유해 ‘철의 삼각구조’라는 비난까지 샀던 일본은 요즘 ‘접대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4월부터 시행된 이 법은 중앙부처 과장보 이상이 업자로부터 5천엔 이상의 선물이나 접대를 받았을 경우에는 상사에게 보고해야 한다.
최근 ‘광주술판사건’이나 잇따라 터져나온 공인들의 성추문 등은 접대자리에서 일어난 아노미 현상이다. 공익적 요소가 사적 이익으로 전환되고 이를 공동으로 묵계하는 현장이 바로 술자리 접대문화다. 박주산채(薄酒山菜)로도 정겨운 접대문화가 새삼 그리워진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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