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미워한다고 잘못 여기는 세상의 자식들아, 열손가락을 깨물어보라! 안아픈 손가락이 있는가? 더러, 잘못돼가는 자식을 나무라도 미워할 수 없는 것이 자식이며, 무관심해 보여도 속마음은 잘된 자식보다 잘못된 자식에게 더 걱정이 쏠리는게 부모인 것을. 장가 시집가서 자식낳아 키워보면 알고, 부모가 죽고나면 그 심정을 알겠지만 왜 진즉 깨닫지 못하는가!
하긴, 제 자식은 소중하게 키우면서 부모가 저 역시 그렇게 키운줄은 모르고 있으니 사람의 도리가 왜 이지경이 됐는지. 자식이 부모를 구박하다 못해 때리고, 때리다 못해 죽이고, 죽이다 못해 시신까지 훼손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세상이 됐다. 인종지말은 아닐텐데 왜 이러나? 일상의 대화빈곤, 기계생활이 가져온 정서의 황폐라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고쳐가야 할 점이긴 하다. 부모가 옛날 생각만 하고 환경변화를 외면한 채 묵은 훈도방법을 우기는 것도 생각해 볼만 하긴 하다. 하지만 어느 시대든 변하지 않는 것은 인성다움이며 부모형제의 관계는 사람이 사람다울수 있는 영원한 인륜인 것이다.
연전에는 서울서 재산을 탐내 제 아비를 죽인 대학교수가 있더니 이번엔 과천에서 명문대학생이 제 부모를 원수로 생각하고 죽이는 일이 생긴 것은 무엇때문일까?
자식을 돈으로만 키워 커서도 부모의 얼굴이 돈으로만 보이고, 자식 잘 돼라는 질책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어리석음이 가져온 비극은 누구 탓인가. 기왕이면 왜 서울대에 못 갔느냐, 왜 절제있는 생활을 못하느냐는 부모의 나무람, 그리고 군대에 가 있는 동안 면회 한번 안간 것 등을 미워한 것으로 여겨 부모를 원수로 안 것은 지식위주의 교육에도 문제가 있다. 그렇긴 하나, 세상의 자식들은 결국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제 잘 되기 바라는 부모를 탓하는 자식치고 부모보단 자신에게 문제가 더 많다.
효도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효도는 고사하고 자식이 제 앞가림만 잘하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해 하는 것이 부모의 심경이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아마 자식에게 참혹한 주검을 당한 과천의 그 부모도 혼백이 있다면 죽어서도 자식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그 어떤 인연도 부모 자식간의 인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인륜의 이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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