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하는 종교

신령(神靈)에게 음식을 바치며 기원을 드리거나 돌아간 이를 추모하는 제사(祭祀)는 온 인류가 그러했듯이 우리나라도 예로부터 영고(迎鼓), ‘동맹(東盟)’ 등의 제천의식이 있었다.

국가적으로는 ‘원구(園丘)’, ‘방택(方澤)’과 사직(社稷)’의 제사가 가장 중요했고 왕가에서는 종묘(宗廟)의 제사를 으뜸으로 삼았다. 일반 사가에서는 가묘가 있어 조상제례를 정성껏 받들었다. 이러한 제례는 모두 유교의 가르침에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주자(朱子)의 ‘가례(家禮)’를 기본으로 삼아 제사를 지냈다. 이처럼 한국사회는 제사를 매우 중요하게 봉행해왔는데 그리스도 교인들은 조상의 제사지내기를 꺼려왔다. 특히 한국 천주교는 1만여명의 순교자를 낸 뒤 1939년 제사를 허용했지만 처음에는 ‘제사금지령’을 내려 유교는 천주교를 ‘무부(無父)의 사학(邪學)’이라고까지 금기시했다.

그런데 김수환 추기경이 24일 유학자 묘소에 ‘예(禮)’를 올렸다고 한다. 성균관대학교 설립자로 항일 독립투쟁과 반독재에 생애를 바친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1879∼1962)선생 묘소에 분향하고 ‘예’를 올렸다는 것이다.

제13회 심산상(心山賞) 수상자인 김수환 추기경은 “조상제사는 미신이 아니라 부모 사후에도 계속 효를 실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유교가 부모에 대한 효를 통해 천(天)에 대해 대효(大孝)로 올라가는 상향식이라면 그리스도교는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대효를 바탕으로 부모께 효를 하려는 하향식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저는 천주교 성직자이지만 한국인이기에 내 몸 안에도 유교의 피가 흐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평가도 했다.

유교의 인(仁)사상, 불교의 대자대비(大慈大悲)사상, 그리스도교의 사랑정신으로 생명의 문화를 회복하자는 김수환 추기경이 새삼 성스럽다.

/淸河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