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초기 수도 ‘하남 위례성’이 위치했던 곳으로 알려진 서울 풍납토성을 보존키로 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결정이다.
그러나 개발로 인해 수난을 당하는 유적지는 풍납토성뿐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각지에서 개발 논리에 밀려 제2의 풍납토성 유적들이 사라지고 있다.
반만년 역사의 우리나라 땅 속 곳곳에서 흐르고 있는 ‘역사의 숨결’이 도로, 아파트건설 등 각종 개발사업 과정에서 마구 파헤쳐지거나 콘크리트에 파묻히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매장문화재가 훼손되는 가장 큰 원인은 제도적인 허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7월 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개발면적이 3만㎡ 이상일 경우 사전에 지표조사를 해 유구나 유물이 있는지를 파악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시행과정에서는 허점이 적지 않은 것이다. 형식은 사전조사지만 실제로는 업체·업자가 미리 개발계획을 다 세워놓고 요식 절차로 조사를 의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면적 3만㎡ 이하의 개발은 주변에 매장문화재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전 조사의무도 없어 업자가 개발지를 3만㎡ 이하로 쪼개 신청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유적지가 파묻히는 것이다.
전국적인 이같은 현상은 경기도의 경우 경부고속철도 공사 구간인 화성군 봉담면 당하리에서는 1996년 원삼국시대 대장간으로 추정되는 유적이 발견됐으나 시공사측은 270여평의 유적지 중 절반 정도에 석재를 쏟아부어 도로를 만들었다.
인천국제공항 건설지역인 인천 중구 운서동에서도 1997년 신석기시대 빗살무늬지석 등이 발견됐으나 인천 공항공사측은 옛 집인 당집만 복원키로 하고 최근 공항시설물 부지로 정지작업을 했다.
문화재청은 공사과정에서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됐다는 신고를 한해에 40∼50건 가량 접수한다는데 가급적 유적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싶어도 예산부족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경기도와 서울의 한강유역, 경주, 부여, 공주 같은 고도(古都)로 검증된 지역에서도 유적훼손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번 풍납토성 보존 결정까지의 과정을 계기로 유적지 매입을 위한 정부 및 지자체의 예산확보, 발굴비 부담문제, 유적보존 책임, 보상비 및 사유재산권 등 그동안 지적됐던 우리의 문화재 보호정책을 재검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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