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末年

1921년 5월 2일 안성에서 태어난 조병화(趙炳華)시인이 팔순을 맞이하여 50권째 시집 ‘고요한 귀향’을 상재했다.

1949년 첫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을 내고 문단활동을 시작했으니까 1년에 한 권씩 시집을 낸 셈이다. 한국은 물론 세계 시문학사에도 유례가 없는 창작활동이다.

조병화 시인은 50권째 시집을 낸 소회를 “소감이 어떻소 당신의 물음에/담담하면서 허전합니다/팔십년 세월 나의 생애가/한꺼번에 쑥 빠져나가는 공허감을 느낍니다/절대 고독이 이뤄낸 절대허무의 희열로 충만합니다”라고 시로 썼다.

일찍이 세계시인대회에서 계관시인의 호칭을 받은 조병화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한국시인협회 회장, 예술원 회장, 그리고 대학교 부총장, 대학원장도 지냈다.

그야말로 부러울 게 하나도 없을 조병화 시인은 그러나 자신의 아호 ‘편운(片雲)’이 상징하듯 인생을 한 조각 구름으로 생각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셔주고 있는 명시들을 썼다.

문인들과 모일 때 비행기 안에서, 버스 안에서, 야외에서 문인들의 얼굴 옆모습을 몰래 스케치하여 슬며시 건네주며 ‘참 잘 생겼다’고 추켜 세워주는 조병화 시인의 일화는 유명하다.

1988년 문화부기자 시절 경기일보 창간 축시를 청탁하러 서울 혜화동 작업실을 찾아갔을 때 지지대子의 시집들 제목을 기억해준 추억도 있지만 조병화 시인은 전국 문인들의 작품집을 증정받으면 일일이 엽서로 답장해주는 따뜻한 보살핌이 있다.

“나는 시를 살았지 만든 적이 없다”면서 시는 독자와 얘기해야지 평론가하고 하는 게 아니다”라는 조병화 시인이 최근 유서같은 묘비명 ‘꿈의 귀향’을 썼다.

“나는 어머님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 나왔다가/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어머님께 돌아 왔습니다”

지순지고한 철학이 깃든 행복한 삶의 말년(末年)이다.

/청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