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40대 이상 사람들이 간직한 추억거리 가운데 달걀이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달걀로 만든 반찬이 밥상에 오르는 날은 한달에 몇날 정도였다. 그날은 무슨 좋은 날이거나 귀한 손님이 오신 날이었다.

예전에는 소풍가는 날 아니면 운동회날에야 삶은 달걀 몇 개를 먹을 수 있었다. 어쩌다가 도시락 밥을 달걀프라이가 덮은 날은 점심시간이 더욱 기다려졌다. 달걀을 낳아주는 씨암탉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고 사위가 와야 씨암탉을 잡아 대접했다.

아버지의 따뜻한 밥 속에 어머니가 넣어둔 날달걀은 그날 먹어보지 않아도 맛을 알 수 있었다. 밥의 온기에 흰자는 슬쩍 데워지고 간장만으로 즐길 수 있는 비릿하면서도 풍부한 맛은 아이들의 밥맛을 더욱 돋워줬다.

깨어질세라 하나 둘 모아 둔 달걀은 시장에 내다 팔아 살림살이에 보탰고, 달걀꾸러미는 학교 선생님에게 드리는 최대의 선물이었다.

그렇게 소중한 달걀이 지금은 너무 많이 생산돼 값이 폭락했는데도 사가는 사람들이 적어 거리에서 판촉활동을 벌이는 세상이 되었다.

양계농가의 안정적인 소득보장을 위해서 돈도 안받고 달걀을 나눠주는 진풍경도 가끔 눈에 띄는데 현재 우리나라엔 5천2백여만 마리의 산란계가 있다고 한다. 시장개방에 따라 들여오는 수입달걀 숫자까지 합치면 달걀 생산량이 짐작된다. 사정이 이러하니 양계를 하는 농민들은 생산비도 못건진다.

국방부와 각 공공단체에서 달걀소비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농약걱정없고 영양이 풍부한 달걀을 하루에 1개씩만 먹으면 달걀값은 금세 회복된다고 한다. 각 가정마다 추억을 이야기하며 밥상에 달걀로 만든 반찬을 올려 놓았으면 좋겠다.

/淸河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