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발생한 서울 이태원 외국인 술집 여종업원 살인사건의 범인은 역시 미군이다. 이번에 피살된 여종업원은 90년대 들어 미군이 저지른 살인사건의 7번째 희생자가 됐다.
법무부와 경찰청의 집계에 따르면 한미행정협정이 개정된 91년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범죄는 연평균 7백70여건에 이른다. 지난해 주한미군이 저지른 살인 강도 절도 등 강력범죄만도 살인사건 1건을 포함해 1백75건이나 된다. 이는 98년의 1백38건보다 27%가 늘어난 수치다.
67년 체결된 이후 91년 한차례 개정된 한미행정협정은 한국내에서 주한미군의 법정지위를 규정한 협정이다. 그런데 이 한미행정협정은 불평등이 너무 심하다. 가장 심각한 부분은 한국정부의 형사재판권 행사의 제한이다. 재판권을 갖는 사건에 대해서도 한국정부는 미국이 요청하면 재판권 행사권리를 포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군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즉 미군측이 피의자의 신병인수를 주장하면 최종재판을 거쳐 형이 확정된 뒤에야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다. 미군과 미군속 피의자의 경우 미군측 동의가 없으면 한국 사법당국에 의한 구속수사는 재판이 종결될 때까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측 수사당국의 조사도 미군헌병의 입회하에서만 가능하다. 국가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미군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붙잡히더라도 자신들이 미군시설에 구금된다는 점과 미군 관계자들이 참여한 조사만 증거로 인정된다는 점을 악용, 우리 수사기관의 조사에 비협조적이거나 한국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이번에 여종업원을 살해한 미군의 경우도 살인사건 피의자임에도 한국 경찰은 그를 경찰서로 불러 조사한 뒤 미군 영내로 다시 돌려보내고 있는 한심한 실정이다.
현행 한미행정협정은 마치 지배계급과 식민지간의 조약같다. 주권국가로서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행정협정은 체결 당시부터 우리측의 준비부족으로 많은 조항이 미군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돼 있다. 미군혐의자들이 쉽게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이 협정이 개정되지 않는 한 한국의 사법권을 경시하는 미군의 범죄는 끊이지 않을 뿐아니라 한·미우호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주권국가의 권위를 더 이상 잃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조속히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