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던 사람아/사랑했던 사람아/너는 나를 잊으라/오늘은 오늘의 나를 위해/너는 나를 잊으라’(‘너는 나를 잊으라’ 中)
8년여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온 박노해 시인의 변모된 모습과 사상을 응축해 놓은 그의 세번째 시집 ‘겨울이 꽃핀다’(해냄)가 출간됐다.
‘얼굴없는 노동자 시인’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밝은 햇살 속으로 나온 박노해시인은 세상에 대해 ‘투쟁가, 혁명가’로서의 모습을 잊어달라고 당부한다.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 발맞춰 자신도 필사적으로 변신하겠다는 의지의 우회적인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이상주의적 희망은 여전하다. ‘살 맛 나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
‘희망과 믿음과 사랑이 있는 세계, 평등과 자유와 화해가 있는 세계’. 그의 이런 이상적인 세계는 언뜻 보면 관념적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혁명을 꿈꾸며 온 몸을 던졌던 그이기에 그의 꿈이 허황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그는 출옥 이후 실제 자신의 이상 실현을 위해 여러 현장에서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다. 과거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음지에서가 아닌 양지에서, 노동운동 진압의 심장부인 노동부에서 강의를 하는 등 활동의 범위가 한층 넓어졌다는 것 뿐이다.
‘본디 속되고 맑음이 어디 있으랴/이 썩어드는 듯 보이는 연못 세상에도/어디선가 쉬지 않고 맑은 물줄기는 흘러들고 있으니/아무리 못된 사람도 그 안에는/빛나고순정한 구석도 숨어 있으니’(‘연꽃 뿌리’ 中)
진흙탕 속에서 순정한 연꽃이 피어나고 차디찬 한풍이 휘몰아치는 겨울에 한 송이 꽃이 만개하듯이 그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 맛 나는 곳으로 바꾸기 위해 오늘도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투쟁과 다툼의 일생을 살아왔던 그이지만 기나긴 수감생활을 거치면서 포용과 상생의 의미를 가슴 깊이 담았다.
‘뜨거운 마주봄이 아니어도/일치된 한 길이 아니어도/서로 속 아픈 차이를 품고/다시 강물을 이루어야 하네’(‘새벽 강에서’ 中)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있어서 투쟁과 혁명만을 외쳤던 그가 화해와 포용의 중요성을 머리에 담고 한층 성숙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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