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개발과 문화재는 그 양이 정비례한다.
문화재 발굴이 늘어나고 이에따라 각 박물관 수장고가 유물로 채워진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국토가 파괴되어 간다는 증거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올해는 문화재청 승격과 함께 사실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고 있으나 문화재정책에 분기점을 이룬 한 해라고 할 수 있다.
개발이 불가피한 이상 그에 앞서 문화재 조사를 반드시 거치도록 법으로 강제화했기 때문이다. 한 고고학자가 예상하듯이 지난 7월1일자로 개정 문화재보호법이 시행됨으로써 적어도 앞으로 30년 동안은 고고학자들은 돈벌이 걱정은 커녕 허리가 휘어져라 땅만 파야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발굴로 보면 아무래도 초기 백제사를 새로 쓰게 한 서울 송파구 송파동 풍납토성 발굴이 첫손에 꼽힌다. 성벽과 성벽 안쪽 주거지역에 대한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한신대 두 기관의 발굴 결과 풍납토성은 적어도 서기 200년 즈음에는 축조가 끝난 한성백제(BC 18∼475년) 왕성터임이 확정됐다.
또 올해는 삼국시대 목간 연구에 분기점을 이룬 한해로 기록되게 됐다. 경남 함안 성산산성에서는 신라 지방통치와 수취제도의 실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6세기 후반 신라목간 27점이 무더기 출토돼 학계에 보고돼 빈약한 문헌기록을 보충해 줬고 다른지역에서도 목간이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호남지역은 올해도 역시 발굴의 보고. 서해안고속도로 건설예정지 군산-고창 구간에서 무덤 봉분 주위를 따라 도랑을 판 2∼3세기 즈음 주구묘(周溝墓) 43기가 무더기로 발굴됐으며 전북 고창에서는 4세기말∼5세기초쯤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길이 70m, 봉분높이 9m에 이르는 초대형 고분이 발견됐다.
또 지난 96년 삼국시대 고분인 전남 나주군 복암리 3호분 옹관에서 출토된 1천500년 전 인골의 주인공은 어머니가 같은 남녀인 것으로 밝혀졌다. 더불어 전남 나주복암리 3호분에서는 왜(倭)의 영향이 뚜렷한 원통형토기가 나왔다.
발굴이 문화재 파괴행위라면 보호측면에서 날로 그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보존과학은 올해 더욱 뚜렷한 업적을 냈다.
3년7개월간의 보존처리 과정을 통해 공개된 경주 감은사 동쪽탑 출토 7세기 후반 통일신라 금동사리함은 신라 금속공예기술의 정수를 보여주었으며 경남 창녕군 계성면 명리의 가야고분에서 나온 은새김 규두대도도 보존과학의 힘을 빌어 원형에 가깝게 복원됐다.
몇년째 계속되고 있는 한국과 프랑스간 외규장각 도서반환 협상이 재개된 점도 눈길을 끈다. 외규장각 도서반환 운동을 개시했던 주인공인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 교수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극동함대 해군이 방화 약탈할 때 강화도에 있던 조선왕실 도서관인 외규장각에는 1천7종, 5천67책이 소장돼 있었으며 이 중대부분이 잿더미로 변한 사실을 규명해 냈다.
문헌기록으로는 한국초의 한국 한문소설로 통하는 매월당 김시습(1434∼1493)의 ‘금오신화’(金鰲新話) 판본 중에서 가장 오래된 1592년 임진왜란 이전 것이 중국에서 발견된 점이 가치가 크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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