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항아리 특별전 높은 관심 끌어

최근 조선조 왕실의 출산풍속 가운데 하나인 ‘태(胎) 모시기’가 일반인에 알려지기 시작하며 이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화재청 궁중유물전시관이 지난달 8일부터 덕수궁에서 전시하고 있는 ‘태항아리 특별전’(-2000.2.28)이 한 달만에 10만여명의 관람객을 기록한 것도 이같은 높은 관심을 말해 주고 있다.

더욱이 신생아의 탯줄이 병원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버려지는 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같은 ‘태 모시기’는 생명존중에 대한 지혜를 엿보는 데도 한몫 하고 있다.

조선왕실에서 아기의 탯줄을 버리지 않고 봉안의식에 따라 정성스레 모셨던 것은 조상의 음덕이 전해져 아기가 무병장수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고대 신라시대부터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 이 태 모시기 의식은 왕비가 아기를 낳으면 항아리에 탯줄을 넣었다가 생후 3일 이후 7일 안에 탯줄을 백번 씻어 내는 ‘세태(洗胎)’의식부터 거행됐다.

씻겨진 태는 다시 항아리에 담겨진 뒤 전국 각지의 명당에 ‘태실(胎室)’을 조성, 안장했다.

이렇게 조성된 왕과 왕비 등 왕손들의 태실은 조선후기까지 경기, 충남·북, 강원, 경북 등 전국에 걸쳐 130여곳에 이르고 있다.

서울에서 편도 100리 이내에 위치해야 하는 규정이 있었던 능(陵)과는 달리 태실은 ▲들 가운데 높지 않은 둥근 봉우리(卵形) ▲용호(龍虎)로 비유되는 늠름한 산2개를 마주보는 위치 등으로 ‘친근한’ 명당에 자리한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인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태실이 왕가 후손들의 단결 구심점이 되기도 했으며 일제의 조선 강점 이후 이들 태실은 일본에 의해 무자비하게 파헤쳐졌다.

일제는 1930년을 전후해 전국의 태실 54기(왕 19기, 왕자 등 35기)의 태항아리들을 ‘안전 보존’이라는 미명으로 서삼릉에 태실군(群)을 조성했으며 전통적인 태실조성 방식을 외면한 채 시멘트 관으로 시설하고 ‘일(日)’자형 담장마저 둘렀다.

이 과정에서 문종, 세조, 성종 등의 백자 태항아리 10여점과 태조 등의 태실봉안 기록이 담긴 태지석(胎誌石)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태실군은 홍수기에 물에 잠기는 등 관리 또한 부실한 채 60여년간 방치됐다.

문화재연구소가 지난 96년 3∼4월 이같이 방치된 서삼릉 태실군에서 태항아리들과 태지석들을 수습해 본격적인 연구활동을 벌인 뒤 최근 세상에 공개한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실정이다.

궁중유물전시관 윤방언(尹邦彦) 전시과장은 “이번 태항아리전을 마치는 대로 전시된 태항아리에 대한 국고귀속 작업을 거쳐 영구 보존하게 될 것”이라며 “아직도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문화재 전문가들이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등 계속적인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연합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