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

전에도 맞벌이 부부가 많긴 많았다. 그러나 의미가 지금과는 달랐다. 전의 기준을 분명하게 언제라고 잡기는 좀 어려우나 대체로 IMF이전으로 보면 될것같다. 그리하여 전에는 맞벌이 부부의 한쪽 수입은 저축을 많이 했다. 남편 수입으로 생활을 하면 아내의 수입으로는 적금을 붓곤 했다.

지금은 그럴 형편이 못된다. 웬만한 수입의 부부 맞벌이로는 다 합쳐도 생계를 꾸려가기가 바빠 여간해서는 저축하기가 어렵다. 노동임금이 회복안된 탓도 있지만 그만큼 물가가 올라 지출요인이 늘었기 때문이다.

고급노동 인력의 맞벌이 부부는 형편이 다를지 몰라도 단순노동의 서민층 맞벌이 부부 형편은 대개가 이러하다. 맞벌이 부부 뿐만이 아니고 자녀까지 돈을 번다고 벌어도 생계를 어렵사리 꾸려가는 가구가 적지 않다.

가령 공공요금 따위가 몇배 올라도 생계비지출의 비율이 코끼리 비스켓 까먹기처럼 아무 영향이 없는 권력자나 고소득자는 몰라도 단돈 천원 한장이 아쉬운 영세·서민들은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서민생계의 심각성을 높은 자리에 있는 권력층이 제대로 파악하고 있느냐 하는데에 있다. 물론 말로는 안다하겠지만 실제로 체험하지 않는 민생고를 어찌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여연대’와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우리의 최저 생계선 이하 빈민이 1천만명이 넘는다는 수치를 놓고 정부가 여러가지로 반론에 나섰다.

정부측 반박은 ‘과대추산’이라는 것이 그 요지다. 들쭉날쭉하는 수치놀음이 본질적 핵심이 될 수는 없다. 복지국가에서 빈민의 기준은 무엇일까. 영세·서민층의 뼈저린 고통을 권력자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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