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외곬 지도자 인생에 꽃이 활짝 피었다.’
프로축구 99바이코리아컵 K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 2년연속 우승과 함께 시즌 4관왕 타이틀을 획득한 수원 삼성의 ‘신화’ 뒤에는 ‘명장’ 김호감독(55)의 뛰어난 지도력과 탁월한 용병술이 있기에 가능했다.
삼성 지휘봉을 잡기 이전인 4∼5년전까지만해도 ‘그라운드의 만년야당’ ‘축구계의 비주류’로 축구판의 외톨이에 지나지않았던 김호감독. 그러나 그는 지금 국내 최고의 감독이 됐다.
경남 통영고 1년을 마친 뒤 동래고로 전학한 그는 고교졸업과 동시에 은사의 권유로 63년 제일모직에 입단한 것이 수원 삼성과의 첫 인연이었다.
군 제대뒤에도 팀에 복귀해 현역선수로 거의 5년을 뛰었으니 95년 12월 삼성 창단감독으로 지휘봉을 잡기 이전부터 이미 인연이 닿았다.
78년이후 동래고, 실업축구 한일은행과 프로팀 현대 감독을 거친 김 감독은 국가대표 전임감독으로 94미국월드컵축구에 출전하면서 지도자로서 새롭게 평가받았다.
비록 16강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볼리비아, 독일, 스페인 등과 같은 조에 편성, 최악의 대진운에서도 2무1패로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둔 것이다.
특히 1대2로 지고있던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서정원을 교체투입, 동점골을 뽑아내는 등 선수교체 시기를 정확히 맞추는 감각을 갖고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의 뛰어난 용병술은 최근 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박건하의 결승골이 그랬고 2차전 역시 0대1로 끌려가자 부상중인 용병 데니스를 투입, 프리킥으로 상대 수비수의 자책골을 유도하기도 했다.
김정남, 이회택 씨와 함께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초 국가대표로 활약한 그는 자신이 수비수였음에도 일찍부터 공격축구를 강조, 한때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유난히 정신력과 예의를 강조하는 김호 감독은 옳지않은 것을 은고 쏘아대던 독설때문에 ‘독설가’로 찍혀 흔한 축구협회 이사 자리 한번 못해보았으나 이제 국내 최고의 승부사로 만개하고 있다./황선학기자 hwangpo@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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