母 가르침으로 전통수의 제작... 생업보단 명맥 잇는 것에 의미 인터뷰_한상길 전통수의 대표 임미숙
임미숙씨는 오늘도 ‘한상길 전통수의’에서 혼자 작업한다. 그 흔한 음악도, 말소리도 들리지 않고 서걱서걱 가위 소리와 재봉틀 소리만 조용히 울린다. 망자의 평안을 바라는 작업실의 고요는 적막하기보다 평화롭다.
◆ 어머님이 물려주시다
임미숙씨(70)는 평택시 현덕면에서 2대째 ‘한상길 전통수의(壽衣)’를 운영하고 있다. 손님의 주문을 받아 제작하고 그에 맞는 값을 받고는 있지만 ‘운영’이라는 표현이 적합한지는 의문이다. 1년에 15벌 남짓, 그것도 윤년이나 윤달이 낀 해 생산량이 이 정도다. 임씨 역시 생업보다는 명맥을 잇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도 주문이 많지는 않았어요. 대부분 상조회사를 통해 장례를 치르다 보니 수의를 따로 준비하는 일도 줄었습니다. 그래도 환갑을 앞둔 분들이나 특별한 경우엔 더러 찾으시더라고요. 이렇게라도 전통 방식의 수의를 제작하는 걸 다행으로 여깁니다.”
상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임씨의 시어머니 한상길씨(2022년 작고)가 오랫동안 수의를 제작하던 곳이다. 1999년 경기으뜸이로 선정되며 평택시의 수의장(壽衣匠)으로 지정된 바 있는 한씨는 어린 시절 집성촌에 살며 예닐곱 살부터 동네 어르신들의 어깨너머로 바느질을 배웠다. 동네에 장례가 있으면 어르신 6~7명이 모여 해가 지기 전까지 수의를 지었고 그 옆에서 심부름하며 수의 짓는 법을 익혔다.
“워낙 손재주가 좋고 손으로 곰실곰실 무언가 만드는 일을 즐기셨어요. 작업실에 있는 바구니 같은 것도 어머님이 만드신 것들이고, 평상복에 쓰이는 매듭단추도 나중에 저 쓰라고 많이 만들어 두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에게 어머님이 수의 짓는 기술을 물려주고 가셨잖아요. 옷을 지을 때마다 어머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 망자를 대접해 드리는 마음
수의는 죽을 때 입고 가는 마지막 옷이다. 부유하건 가난하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 때 가져가는 유일한 물건이기도 하다. 이승의 모든 인연과 소유욕을 훌훌 털어버리고 가도록 단추도 주머니도 없다. 바느질은 되돌아박기를 하지 않고 실을 이어 쓰거나 매듭을 짓지 않는다. 저승에 도착한 망자가 이승과의 끈을 쉽게 풀 수 있도록 잘 풀리도록 묶는다. 한상길씨는 수의가 갖는 이런 의미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망자에게 늘 최대한 예의를 갖췄다. 임씨는 “어머님에게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망자를 대접해 드리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어머님은 작업 중인 수의를 넘어 다니는 걸 용납하지 않으셨어요. 작업 중엔 TV는 물론이고 라디오도 틀지 말도록 하셨습니다. 소리가 나면 산만해지고 그러다 보면 실수가 생긴다는 뜻이죠. 바느질을 하기 전에 꽂아둔 시침핀 하나도 행여 망자에게 해가 될까 빠뜨리지 않고 뺄 것을 강조하셨는데 함께 일하던 직원이 ‘죽은 사람인데 뭘 알겠냐’는 농을 쳐서 어머님과 저 모두 할 말을 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론 힘들어도 저희 둘이 작업을 했고요. 그만큼 철저하셨고 망자에 대해 조심스러워 하셨습니다.”
◆ 삶과 죽음, 정성껏 대하길
인간은 누구나 늙고 죽는다. 어느 하나 슬프고 아쉽지 않은 죽음은 없지만 한평생 성실히 살다가 크게 괴롭지 않게 숨을 거둘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축복으로 여길 만하다. 임씨도 “환갑쯤에 수의를 마련해 두면 오래 건강하다는 말에 부부가 손을 잡고 주문하러 오는 경우가 많다”며 “죽음을 준비하는 만큼 삶을 더욱 정성껏 살고 있다는 방증이 아니겠냐”며 미소를 띤다. 그러나 늙지 못한 죽음도 있다. 사고로, 병으로 짧은 생을 살다 가는 사람들. 임씨도 젊은 손님들의 수의를 지을 때 더 애달프다고 말한다.
“어머님 계실 때였는데 40대 여성이 자신의 수의를 주문하러 온 적이 있습니다. 유방암 말기인데 가족 없이 혈혈단신이라더군요. 마지막 가는 길에 아무거나 입고 싶지 않아 준비하러 왔다는 말에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또 한번은 한 어머니가 사고로 죽음을 눈앞에 둔 20대 아들의 수의를 부탁하러 오셨어요. 아들의 탄생을 기다리며 배냇저고리를 마련했듯이 세상을 떠날 아들의 옷도 준비해주고 싶다고요. 한 번씩 ‘다들 잘 갔겠지….’ 떠오르곤 합니다.”
2022년 세상을 떠난 한상길씨도 임씨의 남편이자 자신의 아들의 수의를 직접 지어 입혔다. 또 자신보다 몇 해 먼저 떠난 남편과 자신의 수의도 예순이 되는 해에 지어 뒀다. 며느리 임씨를 위해선 수의를 만들진 못했지만 좋은 삼베 천을 마련해 두고 갔다. 임씨는 요즘도 혼자 바느질하다가 문득 “어머니 고마워요” 혼잣말을 하곤 한다.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 한동안 그 적적함이 이루 말할 수 없더라고요. 어머님 모시고 병원 다닐 때면 한 번씩 ‘미안하다, 고맙다’ 하셨어요. 그런 말을 들으면 ‘내 고생을 알아주시는 구나’ 할 것 같은데 ‘우리 어머님 많이 약해지셨네’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 아파요. 좀 더 살갑게 대하지 못한 일만 가슴에 남네요.”
임씨는 스스로 “손재주가 없다”고 말하며 웃었다. 한상길씨가 그랬듯이 어깨너머로 수의 짓는 법을 익혔는데 족히 10년은 걸린 것 같다고. 처음 시집와서 풀을 잔뜩 먹인 삼베를 가마솥에 삶아 천근만근 무거워진 천을 널고 말려 옷을 지을 수 있는 옷감으로 만드는 일부터 배운 임씨. 당시엔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전통방식의 수의 짓는 법을 배우고, 고수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크다. 3남매 중 할머니를 닮아 손재주가 좋은 둘째 딸이 이 일을 배웠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강요하긴 힘들다.
“지금 당장은 싫다고 하지만 절대 안 한다고는 안 했으니 지켜봐야죠. 조만간 어머님께 배운 기술을 글로 풀어 자식들이 볼 수 있도록 정리해 두려고 합니다.”
생전에 한상길씨는 ‘관혼상제’를 허례허식으로 여기며 인간이 살고 죽는 부분을 축소하는 세태를 아쉬워했다. 임씨도 같은 생각이다.
“삶을, 또 죽음을 정성껏 대해주면 좋겠어요. 누구나 맞는 죽음인데 터부시하기보다는 준비할 수 있는 현재를 감사하면서 말이죠. 죽음을 생각하는 삶은 고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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