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식 시인·문학평론가
선진국을 재는 척도 중 하나는 문화와 예술이다. 높은 문화는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든다. 물화 중심의 세계를 좇다 보면 사회계약론자들이 지적한 자연 상태에 빠져 천민자본주의로 전락한다. 우리나라엔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있다. 이 기관을 아르코라 부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모토는 ‘문화예술과 국민을 잇고, 문화예술의 내일을 함께하는 아르코’다. 아르코지원기금은 모든 문화예술인이 받고 싶어 한다. 아르코기금을 받아 수준 높은 수많은 작품이 탄생했다. 하지만 아르코가 문화예술인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작가이므로 아르코 사업 중 문학 부문의 개혁만 논하겠다.
첫째,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지원 신청 작품 심사는 무기명 미발표작으로 해야 공정해진다. 필자가 처음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은 것은 2018년도다. 필자는 1990년도 문예지를 통해 등단했다. 그러나 등단한 문예지가 폐간되자 문단의 주변인으로 남게 됐다. 이렇게 투명 시인으로 존재하다 문학평론으로 다시 등단했다. 재등단 결과 문학평론뿐만 아니라 시 청탁도 받을 수 있었다. 필자는 아르코 지원 신청 부문을 문학평론이 아닌 시를 선택했다. 그 결과 미발표작 시 7편이 발간지원에 선정돼 첫 시집을 등단 30년 만에 낼 수 있었다. 필자가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무기명 미발표작으로 심사했기 때문이다.
둘째,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지원 자격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아르코창작기금은 선정되면 3년이 지나야 다시 지원할 수 있다. 3년이 지나니 지원 조건이 바뀌어 있었다. 출판사 계약서와 작품 한 권 분량을 제출해야 했다. 메이저 출판사와 계약을 맺은 작가에게 유리할 것이 자명했다. 아르코가 기득권자들의 카르텔에 의해 공정성이 무너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발간 지원을 포기하고 무기명 미발표작으로 심사하는 발표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작년에 평론으로 지원 신청을 하려고 보니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으로 또다시 바뀌어 있었다. 조건이 국내외 주요 문학상에 최근 10년 내 수상 이력이 있는 작가였다. 어쩔 수 없이 첫 평론집을 출간하기 위해 인천문화재단에 지원 신청을 했다. 이처럼 아르코는 지원 자격을 자주 바꾸면서 작가들로부터 신뢰를 상실했다.
셋째,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지원금을 대폭 상향해야 한다. 국내 총예산 700조원이 되는 나라의 문학 지원 기금이 적어도 너무 적다. 2024년까지 문학 발간 지원과 발표 지원 총 지원액이 12억원이었다. 그런데 2025년부터 발간 발표 지원이 없어지면서 12억원의 지원 기금이 절반으로 줄어 6억원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선 지원금을 개인당 1천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오른 것처럼 홍보했다. 하지만 총지원금은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이라는 이름으로 6억원이다. 이것은 문학을 무시하고 작가를 기만하는 행위다. 국가 총예산 700조원에 대한 분배의 문제다. 2025년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의 경우 선정자는 30건이고 개인당 2천만원씩 총 6억원이 지원됐다.
이재명 정부는 아르코문학지원기금의 총액을 대폭 늘리고 무기명 미발표작으로 심사해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정부와 지방정부는 제도적으로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의 부족한 고료를 보조해 주고 아르코나 지역 문화재단 기금으로 발간한 서적을 구입해 각 기관에 배포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문예지에 대한 지원금을 늘려 실질적 고료 상승을 돕는 것도 시급하다. 윤석열 정부에 의해 없어진 문학나눔과 발표지원도 즉각 복원하기 바란다. 유럽 국가의 문화예술 정책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정부는 선진국의 척도를 문화예술로 보고 문화예술 정책을 재설계해 블랙리스트 작가들의 상처를 하루빨리 치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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