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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면서] ‘개인적’에 대한 생각

정수자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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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개인적 의견은요....”

 

흔한 표현인데 볼수록 이상하다. 분명히 ‘저’라고 밝히는 뒤에 ‘개인적’을 사족처럼 붙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개인적’의 상대 개념으로 ‘저의 공적(집단적?) 의견’도 가능한지 새겨보면 어색한 표현임이 확연하다. 그런데 많이 쓰이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게다. 그와 비슷이 마주치는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은요...”의 남용처럼.

 

사실 ‘저’라는 화자(話者)를 밝히면 굳이 ‘개인적’을 넣을 필요가 없다. 앞의 예에서 ‘개인적’을 빼고 ‘저의 의견’이나 ‘제가 좋아하는’으로 쓰면 뜻은 물론이고 전달도 명료한 문장이 된다. 그런 문법구조를 인지하는 글에서는 ‘개인적’의 오남용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일상 대화에서는 ‘개인적’을 조금 겸손히 앞에 두는 표현들을 자주 만난다. 관용적 표현도 아닌 ‘개인적’을 남용하는 것은 우리네 문화와 무관치 않은 말하기 같다. 집단주의 사고방식이나 객관식 위주의 정답 찾기의 귀결로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피력할 기회가 적었던 교육환경의 탓이 크겠지만.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 생각 혹은 모범답안과 상관없이 내놓기를 조심하는 분위기. 여기에는 일찍부터 자기 의견을 조리 있게 펴거나 논박하는 기회가 많지 않았던 환경이 깔려 있다. 과묵을 미덕으로 여겨온 전통과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제대로 된 말하기 교육이 없었던 것이다. 이는 보통의 가정이며 학교가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크게 나아지지 않은 듯하다. 대학에 관련 과목인 ‘발표와 토론’ 등이 있지만 많은 학생이 상황에 맞춤한 말하기 능력을 키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사정이 ‘글쓰기’보다 어려운 ‘말하기’ 교육 현장의 실정으로 보인다.

 

그런 환경에서 논리력이나 설득력 등을 잘 갖춘 언변을 기르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말 잘하기로 소문난 대선 후보들 토론에서도 우리네 말하기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지 않던가. 특히 윗사람 의견에 대놓고 반박하기를 거의 금기시해온 데다 아랫사람이 숙여야 한다는 문화적 인자며 정서도 갖고 있다. 그런 분위기에서 강자나 윗사람의 ‘갑(甲)질’로 떠들썩할 때 옥스퍼드사전에 ‘갑질(gapjil)’이 올랐던 기억도 있다. 요즘은 ‘을(乙)질’의 등장으로 약자나 아랫사람의 ‘을질’을 겁내는 세상이 됐지만 말이다.

 

‘저’를 밝힌 뒤의 ‘개인적’은 군말이다. 거기에 여러 생각이 불려 나온 것은 말에 반영된 사회상 때문이다. 그 말을 굳이 쓰는 정황들을 되짚어보니 상대 존중이나 자기 드러내기에 대한 조심도 느껴지는 것이다. 자신의 취향이나 의견의 피력이라면 당연히 집단 및 공적인 것과 다르련만 자신을 조금 낮추듯 조심스럽게 표현하는 느낌이다. 개인주의며 이기주의의 심화를 걱정하는 중에도 여전히 개인의 성향이나 견해 등의 명시는 신경이 쓰이는 것일까. 아니면 잘난 척으로 튀지 않을 표현을 찾다 ‘개인적’을 앞세우는 언어 습관에 편승하는 것일까.

 

MZ세대는 취향이 분명하고 말하기도 다르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 중에도 자기 생각에 ‘개인적’을 얹는 말하기가 자주 나타난다. ‘개인적’을 쓸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상하게 굳은 허례요 상투(常套)다. ‘제가 좋아하는 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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