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스러운 대통령선거전이 막을 내린다. 막판까지 싸움거리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방금 터져 나온 이슈들까지 현수막을 타고 거리거리를 가득 메운다. 대부분 극렬 네거티브 내용이다. 투표 독려를 빙자한 출처 불명의 현수막 홍수다. 이 모두 합법적이라니 더 놀랍다. 시도 때도 없이 정치 현수막 공해에 시달리는 국민들이다. 투표 독려는 당연히 국가 업무 아닌가.
사전투표를 전후해 거리마다 정치 현수막들이 기승을 부린다. 공식 선거운동 현수막은 후보 사진과 기호, 정당을 명시한다. 읍·면·동 기준 2개까지만 내걸 수 있다. 유권자들에게 후보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거리마다 현수막이 우후죽순이다. 투표 독려의 탈을 쓴 악성 네거티브 캠페인이다.
인천 연수구 송도동이나 인하대 주변 등 주요 교차로마다 이런 현수막들이 시야를 가린다. ‘커피원가 120원? 분노하면 투표장으로’, ‘진짜에 투표해야 독재권력 막습니다’, ‘내란 종식에 한 표를!’, ‘12.3 다시 겪고 싶지 않다면 지금 한 표!’
얼핏 보면 투표 독려 활동인 것 같다. 조그맣게 투표 날짜도 안내해 놓았다. 그러나 본심은 그게 아닌 것으로 읽힌다. 투표를 하되 특정 후보에게 찍으라는 강요다. 누가 내걸었는지도 모른다. 거리는 어지럽고 시민들은 불쾌감을 느낀다. “현수막이 너무 많고 자극적이라 혼란스럽고 불쾌하다”고 한다. “투표 독려를 빌미로 상대 후보를 헐뜯고 시민들까지 정쟁에 끌어들인다”고도 한다.
문제는 이런 사이비 투표 독려 현수막의 난무가 합법적이라는 점이다. 공직선거법 제58조2다. ‘누구든지 투표 참여를 권유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 정당의 명칭이나 후보자의 성명·사진 또는 그 명칭·성명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현수막 등의 사용은 금지된다. 그런데 투표 독려 현수막을 내거는 데는 개수 제한도 없다. 개인, 단체, 기관을 막론하고 아무라도 무제한으로 내걸 수 있다. 누가 만든 법인가.
전국 곳곳에서 이런 현수막들에 대한 민원이 쏟아지는 모양이다. 최근 선관위가 해석을 내놓았다. 표현이 애매한 경우에도 특정 후보 선거운동과 관련한 명확한 메시지가 들어가지 않는 이상 선거운동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니 더 지능적으로 현수막을 만드는 것인가. 사실상의 적나라한 선거운동에 투표 독려를 덧칠하는 것이다.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지만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다. 투표 독려 업무를 향우회나 동창회 등에 내맡기는 나라가 또 있는가. 참 허접한 선거 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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