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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2 (수) 메뉴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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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가능성 있는 천재에 투자하라

양승규 예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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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은 이제 케이팝을 넘어 세계 문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눈부신 성과는 극소수에 집중돼 있으며 그 바탕이 되는 창작 생태계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신진 음악인과 소규모 제작사는 창작 초기부터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가능성 있는 콘텐츠가 시장에 진입조차 하지 못한 채 사장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병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공이 일정 수준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창작 초기 단계의 음악 프로젝트에 선제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유망한 창작자들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고 궁극적으로는 자생적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 ‘뮤지션 투자 사업’은 이러한 필요에서 출발하는 개념으로 단순한 보조금 지원을 넘어 공공이 투자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향후 수익 일부를 회수해 재투자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지향한다.

 

현재 대중음악 산업은 높은 초기 비용과 낮은 성공 확률이라는 구조적 리스크를 안고 있다. 음반 제작, 공연 기획, 마케팅 등에는 수천만원의 자금이 필요하지만 창작자는 담보도 없고 신용도 낮아 민간 금융 접근이 쉽지 않다. 민간 투자 역시 성과가 검증된 아티스트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크다. 따라서 공공이 먼저 나서 고위험 영역에 투자하고 이를 기반으로 민간 투자를 유도하는 ‘마중물 역할’이 필요하다. 이는 단기 성과 중심의 민간 시장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며 창작 생태계 전반을 튼튼히 하기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정책적 책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업은 단순 지원이 아닌 ‘무이자 선투자’ 혹은 ‘조건부 환수’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프로젝트당 약 3천만 원에서 1억원 내외의 금액을 선투자하고 수익이 발생하면 일부를 회수하는 구조다. 정산은 반기 또는 분기 단위로 진행하고 음원 플랫폼이나 공연 데이터를 연동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투명하게 운영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특히 민간 음악 투자사 또는 제작사와 공동 투자하는 구조로 설계함으로써 공공이 먼저 시장성을 검증하고 이후 민간의 후속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공공 단독 사업’이 아닌 시장과의 접점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모델로 진화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업모델이 존재하며 그 효과는 이미 입증되고 있다. 영국 PRS파운데이션의 ‘모멘텀뮤직펀드’는 신진 음악인에게 제작, 마케팅, 투어 등을 위한 자금을 지원하면서도 수익 일부를 회수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 10년간 수백명의 글로벌 아티스트를 배출했다. 미국의 ‘사운드로열티’는 창작자의 저작권 수익을 기반으로 미래 수익을 선지급하는 민간 모델로 창작자가 지식재산권(IP)을 담보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공공 혹은 민간이 창작 초기의 리스크를 감수함으로써 다양한 음악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한편 음악은 지역 정체성을 담은 콘텐츠이자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따라서 ‘뮤지션 투자 사업’은 한 명의 창작자 지원을 넘어 지역문화재단 및 글로벌 유통 채널과 연계돼 창작 프로젝트의 전국적 확장, 나아가 세계 시장 진출을 돕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해당 사업은 문화예술 분야에만 한정된 정책이 아니라 지역 산업정책, 청년 일자리, 콘텐츠 수출 전략과 맞물리는 중장기 투자로 해석돼야 한다.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예산 사업이 아니라 창작 생태계를 구조적으로 바꾸는 공공 투자 시스템이다. 공공이 먼저 움직이고 민간이 이어받아 함께 키워가는 구조. 이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음악 산업의 미래 모델이 돼야 한다. 가능성 있는 창작자가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공공이 책임 있게 지원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문화강국의 출발점이며 한국 대중음악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자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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