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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기마 유목민·칭기즈칸 고향 ‘몽골고원’

전쟁의 역사 잠들어 있는 몽골고원 방문
독특한 바위지형 테를지국립공원서 한가로이 시간 보내
몽골 영웅 기리는 ‘칭기즈칸기념관’ 둘러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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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장前 관세청장

 

■ 몽골 스텝 지대의 호전적 기마 유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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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스텝 지대 목축 초원 풍경. 작가 제공

 

영국의 세계적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는 인류 역사를 두 가지 특징으로 표현했다. ‘유목민과 정주민의 전쟁’, ‘자기가 믿는 신이 최고라는 종교와 종교의 전쟁’이다.

 

세계 역사를 흔들었던 기마 유목민의 고향은 몽골고원 서쪽 오논강과 외팅겐 지역이다. 다르항 근처에 몽골족들이 신성시하는 오논강과 외팅겐산이 있다. 오논강 근처는 과거 돌궐족의 수도였고 칭기즈칸 출생지와 초기 몽골제국 수도였던 카라코람이 있다.

 

몽골고원을 통일하고 중앙아시아 대초원을 정복한 종족은 흉노족, 돌궐족, 몽골족이다. 이들은 몽골고원을 통일한 다음 서쪽으로 중앙아시아 지역, 카스피해 북쪽 초원을 정복해 대제국을 일궜다. 남쪽으로 중국을 수시로 침략해 만리장성을 축성하게 했다. 만주 지방 고구려 전신인 부여를 멸망시킨 것도 흉노족이다.

 

유목민은 큰아들이 결혼하면 분봉해 멀리 떠나보낸다. 막내아들은 아버지와 가장 늦게까지 산다. 부친의 후계자를 정하는 관습은 부모와 가장 늦게까지 생활하는 막내아들이 상속받는다. ‘옷치킨 제도’라고 부르는데 ‘화로’를 끝까지 함께한 막내가 상속권을 갖는다. 막내는 부친이 죽으면 남아 있는 부친의 개인재산, 남은 병력을 상속받는다. 친어머니만 제외하고 아들들은 죽은 아버지의 살아있는 부인, 죽은 형제의 배우자도 상속받는다.

 

한나라 시대 흉노 왕에게 시집간 중국의 4대 미녀 왕소군도 남편인 흉노 왕이 죽은 다음 전처 아들과 다시 결혼해 자녀를 둔 비극의 여인이다. 한나라 왕실에서 편히 살았던 왕소군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말한 환경이 이해된다.

 

복잡한 결혼동맹과 막내 상속제도는 왕의 사망 후 형제들. 씨족 간의 권력 다툼이 많이 발생하는 구조다. 몽골초원은 전쟁과 싸움이 끊이지 않는 호전적 사회구조다.

 

■ 테를지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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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를지국립공원 거북바위. 작가 제공

 

오후 한가한 시간을 즐기기 위해 테를지국립공원으로 향한다. 거리에 인파가 매우 많다. 동행하는 앙케씨(장지사장 비서)에게 이유를 물어 보니 몽골의 국가 축제인 나담축제가 어제 끝났다고 한다. 축제 기간 6일이 국경일이라고 한다.

 

나담축제 기간에 몽골인들은 대부분 휴가를 간다. 휴가는 가족 모두가 초원에 가서 먹고, 마시고, 잠자고 오는 게 일반적인 형태라고 한다. 우리가 바닷가, 산으로 휴가를 가는데 몽골 도시인들은 초원으로 휴가를 간다. 나담축제 관광객을 위한 노점상들이 도로 옆에 매우 많다.

 

테를지국립공원은 독특한 바위 지역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관광객 숙박을 위한 게르(천막), 리조트, 카페 등 완전 난(亂)개발이다. 10년 전 여름 테를지국립공원에 별을 보러 온 적이 있었다. 당시 한적한 국립공원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지역이 관광객 유치를 위한 난개발 상태다. 우리 일행도 전망 좋은 카페에서 휴식을 취한다. 한국에서 나담축제를 보러 온 관광객을 카페에서 많이 만난다.

 

도로 사정은 안 좋고, 소득 증가로 자동차가 빠르게 증가하다 보니 울란바토르뿐만 아니라 외곽 지역도 교통체증이 심하다. 몽골인들의 운전 습관은 매우 험하다. 아무 데나 말 타고 다니던 습관이 자동차 운전에도 나타난다고 한다. 동행하는 몽골인에게 자동차 면허시험을 어떻게 보는지 물어봤다. 시험을 안 보고 돈 주고 면허증 사는 사람이 많다고 말한다. 광대한 초원에 흩어져 사는 사람이 대도시 자동차학원에 등록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현실은 이해가 간다. 후진국이 산업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합리한 사회 현상의 하나다.

 

■ 몽골의 영웅 칭기즈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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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국민 영웅 칭기즈칸기념관. 작가 제공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고 100만명을 죽이면 황제나 영웅이 된다”는 말이 있다. 칭기즈칸의 군대는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호전적으로 유명하다.

 

국립공원 가는 길에 있는 칭기즈칸기념관에 들렀다. 기마상 높이는 40m로 미국 자유의 여신상처럼 머리 쪽으로 사람이 걸어 올라갈 수 있다. 말 머리 방향은 칭기즈칸의 고향 오논강을 향하고 있다. 머리 쪽에 사진 찍는 전망대가 있어 사람이 많이 밀린다.

 

지하 1층은 몽골제국의 칭기즈칸 후손들 초상화, 전쟁 무기 등이 전시돼 있다. 칭기즈칸은 1206년 몽골의 대칸(황제)에 올랐다. 이 동상은 몽골 건국 800주년이 되는 2006년 건립이 시작됐다. 전설에 의하면 칭기즈칸이 전쟁 중에 이곳에 떨어진 말 채찍을 주우려 허리를 숙였는데 그 사이 적군이 쏜 화살이 스쳐 지나가 목숨을 구했다는 일화가 있다.

 

13세기 몽골제국 전성기 정복한 유럽과 아시아 대륙 영토지도가 벽에 있다. 13, 14세기 약 100년은 팍스 몽골리카 시대다. 유라시아의 광대한 초원에 평화가 찾아오고 무역과 교역이 발달했던 시대다. 한 번이라도 자랑스러운 위대한 역사가 있는 국민은 자부심이 크다.

 

칭기즈칸 리더십 서적이 한때 크게 유행했었다. 칭기즈칸은 혈족과 부족에 충성하는 유목민 사회에서 능력과 실력으로 사람을 대우했다. 칭기즈칸 초창기 친구인 4명의 맹우에 노예 출신도 있다. 노예 출신 등용은 몽골고원 평민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게 된다.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종전에는 각자 장군이 나누고, 일부만 상납하는 게 당시 관행이다. 칭기즈칸은 모든 전리품을 전체로 총괄해 모은 다음, 전공에 따라 전리품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방식으로 변경한다. 병사들이 씨족, 부족에 충성하지 아니하고, 칭기즈칸 개인에 대한 충성심으로 바꾸었다.

 

몽골이 소련의 위성국가로 있던 1991년 이전까지 공산당은 칭기즈칸을 ‘인민의 착취자’로 낙인찍어 비판의 대상이었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몽골은 국민 통합을 위해 영웅이 필요했다. 이러한 시대적 필요가 인민의 착취자에서 국가의 최고 영웅으로 돌변한 것이다.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은 죽은 지 수백년이 지난 후 영국의 넬슨 제독, 일본의 도고 제독의 평가로 유명해졌다. 박정희 대통령이 아산 현충사 성역화 등 재조명으로 국민 영웅으로 다시 탄생했다.

 

위대한 영웅도 후세가 업적을 제대로 평가해 줘야 영웅이 된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의 유명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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