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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론] 인천 짠물과 소금박물관

최재용 인천연수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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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흔히 ‘짠물’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짠 바닷물을 맛볼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유독 인천만 ‘짠물’이라 불리게 된 이유는 사실 바다가 아니라 염전 때문이다.

 

1907년, 바닷물을 햇볕에 말려 소금을 만드는 천일제염(天日製鹽) 방식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곳이 바로 인천의 주안염전이다.

 

조선 중기 문헌에서부터 보이는 ‘주안’은 원래 지금의 남동구 간석동과 부평구 십정동 일대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 천일제염 방식이 십정동 일대 염전에서 처음 성공하자 동네 이름을 따서 이곳을 ‘주안염전(정식 명칭은 ‘주안 천일제염 시험장’)’이라 이름 짓고 사업을 본격화했다.

 

이어 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로 삼은 일제(日帝)는 질 좋은 소금을 많이 생산하기 위해 주안염전을 확장하는 한편 남동과 소래, 군자 등지에도 계속 염전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1930년대 이후 인천의 소금 생산량은 전국 최고 수준이 됐다.

 

1940년대 정부에서 운영한 전국의 천일염전 면적 통계를 보면 인천의 염전 면적이 1천664정보(1정보는 3천평)로 나온다. 이는 당시 정부가 운영한 전국 천일염전 전체 면적 5천925정보의 28.1%로 다른 행정구역에 비해 가장 넓은 면적이었다.

 

이뿐 아니라 이들 염전에서 나오는 소금을 정제(精製)하는 공장들까지 계속 늘어나 인천은 온통 ‘짠 동네’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인천 짠물’은 이런 이유로 탄생한 별명이다.

 

그러나 그 뒤 인천의 도시 규모가 점점 커지고, 여기에 정부의 수출 주도 정책에 따른 산업단지 계획이 적극 추진되면서 주안염전은 1968년 무렵부터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 대신 그곳에는 수출공단 5·6 단지가 만들어졌다. 1980년대에는 남동·군자염전 등지에도 줄줄이 공단이 들어섰다. 그래서 이제 인천은 염전과는 거의 관계없는 도시가 됐지만 한때를 풍미했던 소금밭의 기억은 ‘짠물’이라는 별명 속에 여전히 살아있다.

 

이런 역사를 따져보면 인천에는 이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시설이 진작에 생겼어야 옳았다. 하지만 십정동에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염전이 있었음을 기념하는 ‘천일제염 시험장 표지석’이 1989년 세워진 것 이외에는 지금까지 별다른 후속 사업이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 얼마 전부터 부평구의 구의회와 주민들을 중심으로 소금박물관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제염 발상지인 십정동에 박물관을 만들어 인천과 소금에 얽힌 여러 역사적 사실과 가치를 널리 알리자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2천여년 전 주몽의 아들 비류가 굳이 인천(미추홀)에 도읍을 정했던 것도 소금 무역을 통한 해상권(海上權) 장악을 꾀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짠물 인천’에 당연히 있었어야 할 박물관의 건립이 이제야 논의되다니 반가움과 함께 시민의 한 사람으로 그동안의 무심함을 반성하게 된다. 부평구뿐 아니라 인천시 차원에서 적극적인 동참과 지원이 이뤄져 멋진 소금박물관이 태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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