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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2 (수) 메뉴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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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균의 어반스케치] 2월의 팔달문로, 삼춘옥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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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전송하고 또 한 달이 지났다. 왕오천축국전의 ‘다시 한 달을 가면’이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구도자 혜초의 한 달은 멀고 느렸겠지만 현대사회의 복잡성은 장마의 급류처럼 겨를 없이 휩쓸려 간다. 설 지나 입춘이 왔건만 마음의 봄은 도달하지 않고 감동 없는 시간은 황소의 하품처럼 목적 없이 흐른다.

 

2월은 돌개바람 쓸고 가는 고향 집 마당의 가랑잎 구르는 소리 같다. 삭풍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마른 잎을 돌돌 말아 오르거나 양철지붕을 두드리기도 했다. 마당은 삶을 담는 서정과 서사의 자취 같다. 문틈으로 장 가신 어머니를 기다리던 저녁나절, 마당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발소리는 아직 환청처럼 남아 있다.

 

미학에 비장미(悲壯美)가 있다. 슬픔도 승화된 아름다움이라는 것. 애틋한 어머니의 희생적 삶을 2월에 더욱 느낀다. 맹물같이 흐르는 시간에 누룽지 숭늉처럼 따뜻하고 구수한 고향은 스침만으로 그립다. 지동교 건너기 전 옛 가구거리 길로 접어들면 국밥집 삼춘옥이 머물러 있다. 늑대집과 마산아구탕이 있는 이 골목은 서린 추억의 뒤란 같다.

 

FM 라디오에서 고향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수원시립합창단의 노래여서 제맛이다. 마지막 소절은 먼 고향의 향수를 눈송이처럼 포근히 안겨준다. “달 가고 해 가면 별은 멀어도/산골짝 깊은 골 초가마을에/봄이 오면 가지마다 꽃 잔치 흥겨우리/아 이제는 손 모아 눈을 감으라/고향 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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