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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오디세이] ‘꼬리표’ 농담처럼 사소화되는 편견과 차별

윤경원 세종사이버대 한국어학과 교수 한국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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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표란 단어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 늘 따라다니는 떳떳하지 않은 평판이나 좋지 않은 평가’를 뜻한다.

 

그런데 누구나 이 단어에 부정적인 의미가 있음을 잘 알고는 있어도 자신이 누군가에게 무심코 던지는 말로 그 꼬리표를 붙이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감지하지 못한다.

 

일례로 ‘동남아’와 ‘다문화’라는 단어를 한번 돌아보자. 이것의 사전적 의미는 각각 ‘동남아시아의 음역어’와 ‘한 사회 안에 여러 민족이나 여러 국가의 문화가 혼재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즉, ‘동남아’는 ‘아시아의 동남부’ 지역인 ‘동남아시아’를 한자로 간단히 나타낸 지리학 관련 용어이고 ‘다문화’란 한 사회의 문화적 변화 양상을 의미하는 사회문화학 관련 용어인 것이다.

 

그런데 과연 한국의 학계가 아닌 일반 언중은 이 ‘동남아’와 ‘다문화’라는 용어를 그 본래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을까.

 

만약 그랬다면 지금처럼 특정 언어·문화권의 사람들을 ‘동남아’나 ‘다문화’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현재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이민자들의 출신 국가 중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 중 하나가 동남아시아다. 그래서인지 스스로 ‘한민족 순수 혈통’이라 자부하는 일부 한국인은 그 지역에서 온 이주민을 통틀어 ‘동남아’ 내지는 ‘다문화’라고 부르곤 한다.

 

이때의 ‘동남아’는 더 이상 지리적으로 아시아의 동남부를 뜻하는 지리학 용어가 아니다.

 

그보다는 동남아시아 출신의 이주민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 안에는 이들을 향한 편견이 내재해 있다. 그러한 점에서 ‘동남아’는 편견으로 점철된 꼬리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다문화’라는 용어는 또 어떠한가. 한국의 언중 사이에서 주고받는 ‘다문화’는 더 이상 학계에서 공유되는 사회문화학 용어로서 기능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 언중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한민족 순수 혈통’이라 할 수 없는 이주민을 구분하고자 하는 꼬리표로서의 기능만 할 뿐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평범한 말로 누군가에게 꼬리표를 붙이며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꼬리표가 붙은 대상자는 본인도 의도하지 않은 편견 속에 숨죽이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꼬리표에 짓밟히고 있는 셈인데, 평범한 말로 꼬리표를 붙인 당사자들에게 이러한 지적을 하면 그들은 대부분 무심코 그랬다거나 농담으로 한 소리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생각 없는 말이나 농담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하는 동시에 언어에 사고가 반영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말들 속에 편견이 내재해 있거나 그 속에서 잠재적인 편견이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배우가 한 시상식에서 “편견은 차별을 낳고, 차별은 폭력으로 이어진다”고 한 적 있다.

 

무심코 던진 말에는 모종의 편견이 내재해 있을 수 있고 그래서 농담이라 항변하는 말들도 누군가에게는 꼬리표가 될 수 있다.

 

그렇게 한번 붙은 꼬리표는 쉽게 떼기 어려우며 그 꼬리표로 차별받는 일상은 당사자에게 벗어날 수 없는 폭력 그 자체로 작용한다. 이렇게 농담처럼 무심코 던지는 말들이 사실은 편견 어린 차별이자 잠재적인 폭력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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