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닙니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습니다”, “내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인사권도 없는 식물 총장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문재인 정권, 특히 조국·추미애·박범계 등 전 법무장관들과 맞서 싸우던 윤석열은 오늘 0시를 기해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신분이 확 바뀌었다.
이제 윤석열 대통령이다. 그런데도 그의 이미지는 부당한 권력에 저항도 하고 핍박도 받던 검찰총장으로서의 ‘윤석열’이 강하게 남아 있다. 사실 그를 대통령으로 이끈 것은 위와 같은 이미지에 국민들이 공감했던 때문이며 그래서 결국 총장의 옷을 벗은 지 1년도 못 돼 대통령까지 오른 것이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일생을 다 바쳐도 달성하기 어려운 정상을 단숨에 올라 선 것.
그러니 그 이미지가 쉽게 지워질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이나 당선인의 신분이 되고서 보여준 그의 움직임은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의 당선인 신분 때와 비교하면 세련되지 못했고 어설프기까지 했다. 물론 정치적으로 세련되지 못했다는 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 집무실 선택 과정에서 보여 준 혼선, 대통령 관저를 외무장관 공관으로 결정하기까지의 잡음, ‘검수완박’의 여야 합의, 그리고 파기 과정의 명쾌하지 못한 정치적 소통의 문제점 등....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에게마저 불안하게 비쳤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고 양심있는 사회단체와 대법원까지도 반대하는 ‘검수완박’에 대해 국민의힘이 보여준 모습은 아무리 선의로 해석해도 지방의회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문제는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일들이 계속 이어질 텐데 과연 성숙한 솜씨로 위기를 타개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런 실수가 되풀이 되면 이탈리아의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가 추락한 안토니오 디피에트로 검사처럼 될 수도 있다.
피에트로 검사는 42세 때인 1992년 부정부패로 얼룩진 이태리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대청소를 실시했다. 이른 바 ‘깨끗한 손’(mani pulite) 운동. 상하의원 945명 중 321명을 수사했고, 619명에게는 국회의원이 갖는 면책특권을 정지시켰으며 현직 총리가 망명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집권당의 실세 의원을 TV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마약과 밀수혐의로 구속하기도 했다. 암살 위협을 받음은 물론 집권당으로부터 사임 압력을 받았지만 그는 흔들림 없이 투쟁했다.
그런 가운데 부패와 관련된 정당 4개가 해산됐고 대기업 총수들이 자살하는 사태가 속출하자 그는 1994년 검사의 옷을 벗고 정치에 뛰어 들었다. 유럽 의회 의원을 거쳐 입각도 하고 상원의원에 진출했으며 마침내 그 자신이 ‘가치의 이탈리아’라는 정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그가 만든 새 정당에 큰 관심을 갖기도 했지만 점점 열기가 식어 갔다. 피에트로가 검사로서 한창 국민 지지를 받을 때는 T셔츠나 맥주 컵에 그의 초상화를 그려 넣은 것이 불티나게 팔렸지만 정치 지도자가 되면서는 그만큼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그가 만든 정당은 집권을 못하고 야당으로만 전전하는 등, 검사로서는 영웅이었지만 정치인으로는 실패를 한 셈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 앞에 놓여 있는 문제들이 너무 험난하다. 북한 김정은은 공공연히 핵위협을 노골화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 안보환경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 원자재 값의 폭등, 그것이 미치는 국내 물가 상승은 국민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손실, 노사 갈등, 빈부격차의 심화... 문제는 끝이 없다.
그런데다 취임 초에 누리는 허니문도 없이 민주당은 다수 원내 의석을 무기로 밤낮 없이 공격을 가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에서 부딪쳤던 개인적인 위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것인가?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과 그 정부가 땀과 눈물, 그 열정을 쏟으면 못 넘을 산이 없다. 처칠이 2차 대전 때 영국을 승리로 이끈 것은 바로 그 눈물과 땀이었다. 국민들의 힘이 되어 줄 땀과 눈물-그것이 최선의 무기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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