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침입죄는 ‘사실상 주거의 평온’을 보호법익으로 하므로 주거침입죄의 구성요건적 행위인 ‘침입’은 위 보호법익과의 관계에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침입’이란 거주자가 주거에서 누리는 사실상의 평온 상태를 해치는 행위 태양으로 주거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고, 침입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출입 당시 객관적·외형적으로 드러난 행위 태양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러한 기조에서 최근 주거침입죄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대법원 판결들이 있어 이를 소개한다.
A는 과거 B와 사귀면서 B의 아파트 비밀번호를 알게 됐다. 이후 A와 B는 헤어졌다. 그러나 A는 헤어진 B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심야 시간에 B의 아파트 공동출입문의 비밀번호를 무단으로 입력해 출입구의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아파트 관리자나 거주자들만의 출입이 허용되는 출입구 내부와 B의 현관문 앞까지 출입했다. A는 B의 현관문 비밀번호를 수차례 누르다가 B의 목소리를 듣고 도주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A가 B의 주거에 몰래 들어간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아파트 관리자의 현실적·추정적 승낙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A가 B의 아파트 공동출입문의 비밀번호를 무단으로 입력하고 출입한 행위는 주거침입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C가 자신과 상대방(D)이 대화하는 장면을 D나 음식점 영업주 몰래 촬영할 계획을 세우고 미리 카메라를 설치하기 위해 음식점에 들어간 경우는 어떠한가. 이 사안에서 법원은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에 영업주의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으로 들어갔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침입행위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설령 행위자가 범죄 등을 목적으로 음식점에 출입했거나 영업주가 행위자의 실제 출입 목적을 알았더라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정이 인정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출입당시 객관적·외형적으로 드러난 행위 태양에 비춰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방법으로 음식점에 들어갔다고 평가할 수 없어 침입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 법원이 식당에 도청용 송신기를 설치해 대화를 녹음한 뒤 언론에 폭로한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에서 주거침입죄를 인정한 사례가 있었는데, 최근 선고된 위 판결로 인해 이제 초원복집 판결은 더 이상 선례로서 적용될 수 없게 됐다.
남성 E가 결혼한 여성 F와 혼외 성관계를 할 목적으로 F의 남편이 부재중인 주거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주거침입죄로 기소된 사건에서 법원은 외부인이 공동거주자의 일부가 부재중에 주거 내에 ‘현재하는 다른 거주자의 현실적인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에 따라 공동 주거에 들어간 경우’라면 그것이 부재중인 다른 거주자의 추정적 의사에 반하는 경우에도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심갑보 변호사 / 법무법인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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