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밟아 다수 챙기는 셈법
투표율 높아지는 순간 몰락
우리 막말ㆍ적대 정치 교훈
흑인들이 분노할 이유는 충분했다. 플로이드는 경찰 때문에 죽었다. 경찰이 목을 조르고 짓눌렀다. 위조지폐 혐의자라는 이유였다. 현행범도, 강력범죄자도 아니다. 과한 제압이었다. 녹취록이 듣는 이조차 답답하게 했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이 절규는 곧 구호가 됐다. 많은 흑인들이 들고일어났다. 유색인종도 적잖이 함께 했다. 시위가 점차 격화됐다. 전국으로 확산됐다. 통치자의 한 마디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트럼프가 말했다.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으로 대응할 것이다.” 경찰의 강경 진압이 시작됐다. CNN 기자 등 언론인까지 연행됐다. 시위대 분노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여기에 트럼프가 재차 ‘가스 밸브’를 열었다. “무정부주의자, 폭도, 약탈범, 극좌파가 주도하고 있다.” 급기야 시위대는 백악관으로 진격했다. 트럼프는 안전 벙커로 피신했다. 그러면서 또 말했다. “주 방위군 등 군 병력을 동원해 진압하겠다.” 흑인 시위대는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트럼프만이 할 수 있는 짓이다. 그는 그렇게 대통령이 됐다. 소수를 공격해 다수를 가졌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고 했다. 라틴계 미국인들의 반감을 샀다. 백인 미국인들은 ‘속 시원하다’고 했다. ‘아시아계 이민자를 막겠다’고 했다. 동양계 미국인들의 반감을 샀다. 역시 백인 미국인들은 ‘트럼프 최고’라고 했다. 그런 구호로 선택을 받았다. 백인의 선택이었다고 봄이 맞다. 그가 또 한 번 소수를 버려 다수를 챙기고 있었다.
그가 선거에서 졌다. 석 달여 뒤다. 4년간 뭘 잘못했다는 증빙은 없다. 고용률은 근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른 경제 지표도 대부분 개선됐다. 1년전만 해도 대적할 상대가 없다던 그였다. 그런데 맥없이 졌다. 부정 투표라며 소리친다. 소송하겠다며 버텨 본다. 하지만, 응답이 없다. 다들 돌아선 것 같다. 트럼프 정치의 종말이다. 49%를 막 대하던 정치의 종말이다. 51%만을 쫓던 정치의 종말이다. 트럼프 셈법은 결국 4년도 못 갔다.
2016년, 전 세계는 트럼프 현상에 빠졌다. ‘필리핀 트럼프’의 막말-모든 범죄자를 사형시키겠다ㆍ인권은 잊어버려라ㆍ마약상을 위한 관(棺)을 준비하라-은 원조를 뺨쳤다. 세계가 비웃었다. 하지만, 두테르테는 독설을 이어갔다. 브라질에도 ‘열대의 트럼프’가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이다. 헝가리에는 ‘동유럽 트럼프’가 있다. 오르반 총리다. 트럼프 셈법-49%를 잔인하게 밟아 51%를 확실하게 얻은-이 옳다며 공개 지지한 이들이다.
한국에도 등장했다. 국정 농단 사건이 무대였다. 거친 정치 언어가 서로 경쟁했다. ‘탄핵하라’ ‘구속하라’…. 시원한 ‘사이다’였다. 그땐 그래도 됐다. 국민 80%가 박근혜에 분노하고 있었다. 폐단은 그 이후다. ‘트럼프 현상’에 분별이 없어졌다. 너도나도 막말 정치에 나섰다. ‘49% 죽이기’를 일상처럼 했다. 정치에도, 정책에도, 심지어 코로나19에도 그랬다. 상대에 상처주는 막말에 경쟁이 붙었다. 정치언어 품격? 그런 건 사라졌다.
이제, 원조 트럼프를 보자. 어찌 됐나. 51%의 거품이 폭삭 주저앉았다. 축축히 젖은 곳에 홀로 남았다. 놀랄 일도 아니다. 이상할 것도 없다. 트럼프 정치라는 게 그런 거였다. 51% 안에서만 가능한 정치였다. 51%만 투표했을 때 이기는 정치였다. 66.8%가 투표하는 순간, 완패로 갈 수밖에 없는 정치였다. 4년 전 세계가 트럼프 현상에 휩싸였다. 49%를 죽여 51%를 챙긴다는 셈법이었다. 이제 세계는 반(反) 트럼프 현상으로 갈 것이다.
‘그건 반드시 실패할 셈법이었다’는 깨달음이다. 정치인 몇 사람, 장관 몇 사람, 그리고 잘 나간다는 몇 사람…. 이들에게는 특히나 필요해 보이는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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