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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기도 박물관ㆍ미술관 다시보기] 21.부천 한국만화박물관

우울한 ‘코로나시대’가 그대들을 부른다…2001년 설립후 2009년 현 장소 이전 재개관
1층, 380석 규모 ‘만화영화상영관’ 흥미진진
2층, ‘만화도서관’ 들어서면 각종 만화책 천국
3층, ‘역사관’ 한국만화 100년사 한눈에 조망
4층 ‘체험관’ 웹툰배경 찰칵… 아이들에 인기

부천시 상동에 위치한 ‘한국만화박물관’은 우리나라의 만화자료를 수집, 보존하고 만화의 예술적 가치를 증대시켜 후대에 남기기 위해 2001년 10월 부천종합운동장에서 개관된 후 2009년 현 위치로 이전됐다. 윤원규기자
부천시 상동에 위치한 ‘한국만화박물관’은 우리나라의 만화자료를 수집, 보존하고 만화의 예술적 가치를 증대시켜 후대에 남기기 위해 2001년 10월 부천종합운동장에서 개관된 후 2009년 현 위치로 이전됐다. 윤원규기자

1970년대의 만화방은 청소년들의 해방구였다. 그러나 어른들은 만화를 불량 식품처럼 위험한 것으로 생각했다. 어른들이 ‘불량한 것’으로 매도했던 만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사람이 즐기게 됐다. 역사 해석에도 뛰어났던 만화가 고우영은 ‘삼국지’를 만화로 신문에 연재해 ‘점잖은’ 성인들까지 독자로 끌어들였다. 강철수, 허영만 같은 만화가들은 어른들도 만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훤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유신의 종말로 잠시 자유를 맛본 청년들은 1980년 5월 이후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이때 등장한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은 좌절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젊은 세대에게 탈출구를 열어주었다. 80년대에 “난 네가 기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까치의 엄지를 향한 고백을 모르는 사람은 간첩이었다. 1990년대는 만화의 부흥기였다. 일본문화가 개방되면서 한국 만화시장도 엄청난 변화와 성장을 가져왔던 것이다. 일본만화의 양과 질은 한국만화를 압도했다. 그렇다면 30년이 지난 현재는 어떨까. 온갖 오락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인데도 청년들은 왜 웹툰에 빠져드는 것일까. 인기를 얻은 웹툰은 속속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부천시 상동에 위치한 '한국만화박물관'은 우리나라의 만화자료를 수집, 보존하고 만화의 예술적 가치를 증대시켜 후대에 남기기 위해 2001년 10월 부천종합운동장에서 개관된 후 2009년 현 위치로 이전됐다. 윤원규기자

■ 한국 만화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부천시 원미구에 위치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사장 이해경) 내 한국만화박물관(이하 만화박물관)은 만화를 좋아했던,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찾아야 할 곳이다. 2001년 10월에 설립했던 것을 현재의 장소로 이전해 2009년 11월에 재개관했다. 만화는 어린이부터 팔순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화이다. 그럼에도 만화 앞에는 오랫동안 ‘불량’이란 말이 붙어다녔다. 만화를 불량식품처럼 취급하던 시절에 ‘우수한’ 만화책들도 불태워졌다. 그렇게 사라져간 만화책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어른들은 만화가 문화 예술적 가치가 아주 높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런 깨달음이 한국만화박물관을 건립하게 했다. 만화박물관에 가면 영영 사라질 뻔했던 우리 만화를 반갑게 만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만화의 소중함을 파악하고 박물관을 설계한 주역들의 혜안에 박수를 보낸다. 만화박물관은 시대와 호흡했던 우리 만화를 후손들에게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물려주기 위해 정성을 쏟고 있다. 만화박물관을 둘러보면 만화가 얼마나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 주었는지를 보여준다.

상설전시실 포토존의 다양한 캐릭터 모습. 곳곳의 포토존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만화박물관은 지하 1층ㆍ지상 4층의 초대형 복합문화공간이다. 규모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넓었다. 만화박물관은 만화 관련 자료를 수집 보관하는 수장고와 만화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민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관은 물론 만화도서관, 교육실, 만화영화상영관을 갖추고 있다. 한 해 평균 26만명이 만화박물관을 찾고 있다고 한다.

1층에 380석 규모의 ‘만화영화상영관’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가족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극장개봉작 애니메이션들이 상영되는 영화관이다. 이곳에서 독립영화를 비롯한 예술영화도 만나볼 수 있다. 아울러 최신 만화에 대한 ‘핫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박물관에서 현재 열리는 행사가 무엇인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2층은 꿈의 공간이다. 책장을 가득 채운 만화책이 유혹하는 만화도서관에 들어서면 누구나 만화책을 보며 행복해 했던 유년 시절의 어떤 풍경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만화 전문 자료실답게 국내만화와 해외만화, 학술자료와 논문 등 31만여권이 소장됐다. 국내 최대 규모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으니 시간 보내기에 아주 좋다. 일반 열람실과 아동 열람실을 구분하고 있으니 아이가 성인물을 볼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이두호 화백의 '머털도사' 조형물. 1989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큰 인기를 끌었다.

3층은 만화역사관이다. 한국만화 100년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을 관람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1909년부터 시작된 한국만화의 역사를 시대와 흐름별로 전시되고 있다. 자연스레 관람객 자신이 만화를 즐겨보던 시대에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찾았던 옛날 만화방의 풍경이 궁금한가. 1960년대를 배경으로 꾸민 만화방에 들어서면 함께 어울리던 고향 친구들 얼굴도 떠오를지 모르겠다. 1970~80년대 청년대학생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강철수의 ‘사랑의 낙서’ 같은 성인만화를 보면 옛 애인의 얼굴이 떠오를지 모를 일이다. 만화영화로 제작, TV에 방영돼 더욱 인기를 얻은 이진주의 ‘달려라 하니’,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 같은 명랑만화도 반갑다. 만화잡지 ‘보물섬’에 10년 동안 연재했던 ‘아기 공룡 둘리’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만화주제가를 흥얼거리게 될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유명 만화가들의 캐릭터를 나무 액자에 새겨 넣어 나무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명예의 나무도 찾아보자.

만화박물관은 다양한 기획전을 연 3회 이상 개최하고 있다. 현재 만화 속 페미니즘을 통해 성 평등 인식을 제고하는 ‘노라를 놓아라’ 전시와 5·18 40주년을 기념한 ‘사람과 사람과 사람들. 만화가 기억한 5ㆍ18’ 전시가 진행 중이다. 만화로 여성을 이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아픈 역사이지만 결코 잊어서는 알 될 5ㆍ18을 만화 작품으로 조명하는 이번 기획은 ‘만화는 시대의 거울이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었다.

4층 만화체험관은 어른보다는 아이들이 더욱 좋아할 공간이다. 웹툰 전시코너에 들어서면 2000년대 이후 우리 만화의 큰 흐름을 이룬 웹툰 초기작을 살펴볼 수 있다. 인기 웹툰을 배경으로 한 체험 공간에서 사진을 찍고 출력할 수 있도록 배려한 기획자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네이버 인기 웹툰 ‘조선왕조실톡’ 작품을 활용한 인터렉티브 미디어 체험전시도 역사를 좋아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지하 1층에 마련된 수장고는 첨단시설을 자랑하는 곳으로 ‘고바우 영감’, ‘엄마찾아 삼만리’ 같은 1950~60년대 유명 작가들의 육필원고 8만여점과 ‘코주부 삼국지’를 비롯한 만화 단행본과 희귀잡지 등 희귀만화도서 2만여점과 허영만 작가의 ‘오! 한강’, ‘타짜’를 비롯한 유명 작가들의 육필원고 약 15만점이 보관돼 있다.

한국만화박물관 3층 상설전시실의 모습. 1980~90년대 우리나라 만화의 황금기와 잡지 등의 시대 상황을 느끼고 다양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윤원규기자
한국만화박물관 3층 상설전시실의 모습. 1980~90년대 우리나라 만화의 황금기와 잡지 등의 시대 상황을 느끼고 다양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윤원규기자

■ 만화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

만화박물관에서 유독 눈길을 끌었던 공간이 있다. 그곳은 작가들이 기증한 펜을 전시하는 코너였다. 수북하게 쌓인 작가들의 뭉툭해진 펜을 보면 한국 만화의 힘이 무엇인지 누구나 느낄 것이다. 내용의 정확성을 기하고자 자주 펼쳐 너덜너덜해진 한 만화가의 낡은 국어사전에서 한국 만화가들이 쏟은 정성과 성실함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만화가들의 정성과 집념 그리고 박물관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만화는 이제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엄마 찾아 삼만리’의 경우 원고 전체를 등록문화재로 등재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는 유명 만화가들의 작업실이 있다. 입주한 작가 중에는 우리 귀에 익숙한 너무나 유명 작가들이 여럿이다. “8시가 되면 출근하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화는 엉덩이로 그리는 것이다’라고요” 백수진 학예사가 들려주는 말이다. 사실 1990년대까지 한국만화는 일본만화에 압도됐다. 그러나 2020년 현재 한국이 일본을 앞지르고 있다. 특히 한국 웹툰은 세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백 학예사는 한국만화의 승리를 자신했다. 이미 한국은 K팝을 비롯해 대중문화에서도 일본을 앞지르고 있다.

1970년대 만화가게의 모습을 재현한 공간. 다양한 만화책들과 브라운관 TV에서 방영되는 만화를 만날 수 있다.

한국만화박물관은 하반기에 ‘위안부’를 주제로 한 작품을 전시할 계획이다. 여가부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본래 해외에서 전시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국내에서 진행하게 됐다. 박물관 관계자에게 만화박물관을 자랑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림과 글로 구성된 만화가 소비재가 아니라 역사임을 박물관에 오면 느낄 수 있습니다. 예전 한때는 만화를 불량식품처럼 취급해 화형식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소비재가 아니라 현재를 담은 문화재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부천은 만화를 소중한 문화라는 사실을 가장 일찍 발견하고 만화박물관을 세운 문화도시다. 어서 코로나19가 수그러져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아가 보기를 소망한다. 개관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다시 찾아가보고 싶다.

부천시 상동에 위치한 '한국만화박물관'은 우리나라의 만화자료를 수집, 보존하고 만화의 예술적 가치를 증대시켜 후대에 남기기 위해 2001년 10월 부천종합운동장에서 개관된 후 2009년 현 위치로 이전됐다. 윤원규기자

이경석 (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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