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드문… ‘반성하는 삶’
반성 156
-김영승
그 누군가는 마지못해 사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할 때
그는 붕어나 참새 같은 것들하고 친하게 살고 있음을 더러 본다.
마아고트 폰테인을 굳이 마곳 훤틴이라고 발음하는 여자 앞에서
그 사소한 발음 때문에도 나는 엄청나게 달리 취급된다.
그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도 사실 끔찍하게 서로 다르다.
한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도
살벌할 만큼 다른 의미에서 거래된다.
그들에게 잘 보여야 살 수 있다.
《반성》, 민음사, 2007
말의 뜻이 제대로 옮겨지지 않으면 불화가 싹튼다. 의도한 것과 의도된 것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할 때 우리는 말의 한계를 느낀다. 아니, 말의 한계라기보다 그 말이 오가는 맥락의 막힘이 문제일 것이다. 맥락은 자기중심적이다. 말하는 자의 맥락과 그 말을 듣는 자의 맥락이 완벽하게 일치할 수는 없다. 타인의 말은 자기 생각의 맥락을 통해 재해석된다. 그래서 발화된 말들은 맥락의 벌판에서 눈덩이처럼 부풀어 세상 곳곳을 굴러다닌다. 그것이 소문의 법칙이며, 스캔들(scandal)의 발생 기반이다. 프랑스의 문학평론가인 르네 지라르(Rene Girard)가 스캔들은 “일반적 장애물이 아니라 거의 피할 수 없는 기묘한 장애물”이라 했던 것은 말의 한계, 해석의 차이 등에서 빚어지는 오해가 인간사에 필연적인 것임을 지시하는 것이라 이해된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스캔들의 발생은 필연적이라는 르네 지라르의 견해는 반박의 여지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되돌릴 수 있는, 즉 반성의 힘을 지닌 존재라는 것 또한 스캔들의 불가피성만큼 명약관화하다.
1987년에 발행된 김영승의 시집 『반성』은 ‘반성’이라는 표제에 번호를 붙인 시편들을 선별해 묶고 있는데, 시집의 제일 마지막 시편이 ?반성 608?이다. ‘608’이라는 번호는 적어도 반성이라는 주제로 608편이 넘는 연작시를 썼다는 뜻일 터인데, 이 사실은 매우 놀랍기만 하다. 김영승 시인의 ‘반성’ 연작시들은 시인 개인의 반성이라기보다 불화와 오해와 차별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반성으로 읽혀진다. 그의 연작시들은 하나같이 우리 안에 숨겨진 치부와 속스러움을 통렬히 되돌아보게 만든다. 시 ?반성 156?의 “그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도 사실 끔찍하게 서로 다르다.”는 구절은 특히나 매섭다. 사랑이 끔찍하게 다른 것이 되었다는 시인의 인식은 우리 시대의 사랑이 스캔들(추문)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사랑이나 용서와 같은 지고의 가치들이 “살벌할 만큼 다른 의미에서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시인의 답이다. ‘마아고트 폰테인’과 ‘마곳 훤틴’이라는 사소한 발음의 차이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구별 짓는 속물성은 자기만의 주관적 맥락으로 타인을 재단하는 일종의 억압이고 폭력이다. 그런 살벌하고 끔찍한 행위를 하는 자들에게 잘 보여야 살수 있다는 시인의 말은 그들에 대한 비꼼이자 ‘반어’이며, 나아가 반성에 대한 촉구로 읽혀진다. 이것이 시 ?반성 156?이 전하는 메시지라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개운치 않다.
소통의 벽이 막히고, 자기만의 맥락에 갇혀 타인의 의도를 곡해하는 정도가 심해질 때 시인이 말한 바처럼 우리의 삶은 마지못해 사는 것이 될 수 있다. 사람이 사람과 친하게 살지 못하고 붕어나 참새 같은 것들하고 친하게 사는 것을 더러 본다는 시인의 말이 냉소적이고 쓸쓸하게 들린다. 반성하는 삶이 그만큼 어렵고 드물다는 뜻일 것이다.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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