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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3 (목) 메뉴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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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용의 더클래식] 음악의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음악의 어머니 헨델

헨델을 영국의 국가적 음악가로 만들어준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음악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 음악적 영향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 중 하이든과 베토벤이 대표적이다.

하이든은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를 듣고 자신의 첫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작곡했고, 베토벤은 “나는 모차르트를 매우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헨델의 음악을 알기 전의 생각입니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그에게 있어 헨델은 음악적 우상이었다. 베토벤은 헨델의 음악을 교과서로 삼아 항상 그의 음악을 연구했고, 심지어 병중에서도 그의 음악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초연 당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작품 <메시아>, 이 작품은 ‘메시아’란 뜻 그대로 우리의 영원한 구원자임이 틀림없다.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불리는 두 사람, 바흐와 헨델! 두 사람은 후세에 붙여진 수식어와는 달리 평생 만난 적도 없었고, 전혀 다른 음악적 성향이 있었으며,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다. 그러나 묘한 공통점이 있는데, 1685년 같은 해에 독일에서 태어나고 말년에 같은 돌팔이 안과 의사에 의해 완전히 실명했다는 것이다.

헨델은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레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된 바흐와는 달리 독일 할레에서 외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났지만, 법률가가 되길 바랐던 아버지의 반대로 음악의 길은 쉽게 허락되지 않았고 할레대학 법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오로지 음악이었고, 결국 법대를 그만둔다. 17살에 함부르크 가극장의 바이올리니스트를 거쳐 21살이 되던 해에 이탈리아로 떠나, 당시 유행하던 ‘가극’을 공부하여 가극작곡가로서 명성을 얻는다. 그리고 1710년 휴가차 방문한 런던과 깊은 인연이 되어, 후에 조국 독일을 버리고 영국인으로 귀화한다.

헨델은 영국왕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그 때문인지 그의 유명한 작품은 모두 왕실과 관계가 깊다. 영국의 국왕 조지 1세가 여는 파티음악으로 작곡한 <수상음악>과 조지 2세의 승전을 기념하여 만든 <왕궁의 불꽃놀이>가 그 좋은 예이다. 독실한 기독 신자였던 바흐가 신을 위해 교회 음악을 만들었다면, 헨델은 왕을 위해 왕실음악을 만들었다. 이것이 이 두 사람의 음악적 색깔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헨델은 바흐처럼 말년에 눈병에 걸려 작곡은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 연주마저 포기할 순 없었다. 그는 죽기 일주일 전까지 자신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지휘했다. 헨델은 위대한 음악가와 가난한 음악가를 위해 1천 파운드를 남긴 채, 평생 가정도 꾸리지 않고 전 세계를 누비며 음악을 펼치다 1759년 74세로 화려했던 삶을 마감한다. 세속적인 삶이었지만,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인간미 넘치는 아름다운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헨델! 그는 역시 다정한 ‘음악의 어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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