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으로 몰고 간 수사 착수 절차
법원 무죄 속출하며 무리수 증명
인민재판의 逆, 역사 교훈 새겨야
역사로 남은 두 개의 인민재판이 있다. 로마 ‘Judicia Populi’이 하나다. 인민 집회가 재판권을 행사했다. 관(官)이 유죄로 선고한 사안을 재판했다.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 인민재판이다. 역시 대중 집회가 재판권을 행사했다. 반(反)혁명ㆍ반(反)체제 재판이 주를 이뤘다. 2천년 시차를 둔 두 인민재판이다. 그런데도 똑 닮았다. 초(超)법적 행위라는 점이 닮았고, 권력의 통치 행위라는 점이 닮았고, 역사에서 사라졌다는 점이 닮았다.
그 비슷한 걸 우리가 봐왔다. 청와대 국민 청원이다. 직접 민주주의 실현이라고 했다.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집단이 가하는 위해(危害)였다. 정적에 대한 숙청(肅淸)이었다. 그리고 법치 위에 군림하는 폭거(暴擧)였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개가 이랬다. 권력까지 힘을 보탰다. 그 위해, 그 숙청, 그 폭거를 그대로 인용했다. 사법의 전치(前置)처럼 됐다. ‘국민 청원→청와대 답변→검찰 수사→사법처리’로 이어진 신(新) 재판질서였다.
이것들이 사달 나고 있다. 줄줄이 무죄로 판결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건, 대대적으로 시작한 방산 비리였다. 무죄다. 박찬주 육군 대장 사건, 군 적폐라 명명된 비리였다. 무죄다. 강원랜드 사건, 채용 부정의 상징적 비리였다. 무죄다. 촛불 집회 계엄령 사건, 국기 문란 비리였다. 무죄ㆍ무혐의다. 그리고 현직 판사 4명 기소, 사법 농단이라며 쑥대밭을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무죄다. 무죄 아닌 걸 찾아보기 어렵다.
그때마다 국민청원이 있었다. ‘방산비리 수사를 원점에서 재검토해달라’는 청원이 있었다. ‘박찬주 대장을 이등병으로 강등하라’는 청원도 있었다. ‘(계엄령 주도한)기무사 해체하라’는 청원도 있었다. 사법 농단에 대한 청원은 아주 많다. 폐족(廢族)처럼 만들었다. 청원이 던지고, 청와대가 받았다. 대통령이 답한 것도 많다. ‘엄단하겠다’, ‘처벌하겠다’, ‘수사토록 하겠다’ 등으로 갔다. 이게 다 무죄다. 그 책임이 어디로 가겠나.
온통 문재인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돌아보면 군중(群衆)이란 게 그런 거다. 군중의 주장은 지르면 끝이다. 책임은 특정 자연인에게 간다. 그 주장을 따랐던 자연인이다. 이 경우 문 대통령이다. ‘억울한 사람을 자살로 몰았다’, ‘죄 없는 사람을 옷 벗겼다’…. 적폐 청산 대통령이었는데, 이제 적폐몰이 대통령이 되고 있다. 항소심, 상고심이 계속 열릴 것이다. 어쩌면 대통령의 책임이 갈수록 커져 갈 수 있다. 다 예정됐던 역습이다.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가 말했다. ‘대다수 사람이 미쳐 버릴 때 비로소 혁명의 정신 상태가 준비된다’. 그렇다. 혁명의 본질은 대중의 광기(狂氣)다. 짧게 이는 찰나의 광기다. 2017년 촛불도 그랬다. 순간의 광기가 나라에 넘쳤다. 그 전면에 ‘국민 청원’이 섰다. 대통령이 그 광기를 잡았다. 혁명의 지원군으로 삼았다. 이제 그 광기가 식는다. 세상이 다시 냉정해졌다. 모두 ‘죄 없음’이 되고 있다. 이제 국민청원도 그때 같지 않다.
지방(地方)도 정신 차려야 한다. 철 지난 광기에 매달리면 안 된다. 경기도가 ‘도민 청원’을 열었다. 1년간 답변 1건 했다. 답변 조건 5만을 넘긴 게 없다. 양평군도 ‘콕콕 청원방’을 열었다. 답변 건수 0이다. 성남시는 482건 중 3건, 이천시는 54건 중 4건, 용인시는 476건 중 5건 답변하는데 그쳤다. 어느 공무원이 말했다. “시민들이 주민 청원의 의미를 모른다.” 분석이 틀렸다. 시민의 경고다. 인민재판에 참여 않겠다는 경고다.
그리 멀지 않았던 과거의 한 시대, 사정(司正)이란 인민재판이 있었다. 주연(主演)은 김영삼 정부였다. 5년간 추어댄 칼춤이었다. 그 인민재판의 마지막은 국가부도였다. 그리고 김영삼 정부 스스로 마지막 피고석에 앉았다. 역사가 남긴 인민재판의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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