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계란의 추억을 간직한 분들이 많을 게다. 지금이야 거의 매일 밥상에 오르기도 하는 계란이지만 그땐 그랬다. 귀한 음식이었던 거다. 소중한 추억이 담긴 계란이 오염되었다고 한다. 피프로닐이라는 치명적인 살충제가 추억의 계란을 더럽혔다고 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식약처장은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국내산 계란은 안심하고 드시라”고 경솔하게 말했고 바로 그 며칠 뒤 살충제가 검출되었다는 것이다. ‘살충제 계란이 발견된 농장이 몇 군데인가’라는 국회의원들의 기본적인 질문에도 답변을 하지 못했으며, 총리로부터 업무 파악이 덜 되었다는 질책을 받자 “총리가 짜증을 냈다”고 답변하기도 했다고 한다.
복지국가론이 등장하면서 정부가 관장하는 업무범위가 매우 넓어졌다. 가난한 사람도 돌봐야 하고 어르신들과 아픈 분들도 도와드려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정부의 기본업무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거다. 초등학생도 다 안다. 정부의 고위직 인사는 이런 기본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사람을 인선해야 한다. 역시 초등학생도 다 안다.
모름지기 정부의 주요 직위를 인선할 때 3가지 요건이 있다. 전문성, 코드, 그리고 청렴성이다. 대통령께서 후보시절 발표했다 문제가 되었던 ‘5대 인사배제 원칙’은 이 중 청렴성에 해당되는 기준들이다. 전문성이 없으면 새로 배워 나가야 하는데, 계란 파동처럼 급박한 일이 생길 때 신속히 대처해 나가기 어렵다. 나라 운영이 연습을 하고 있을 만큼 녹록하지 않다는 함정도 있다.
대통령과 코드가 맞지 않아도 문제다. 대통령이 후보시절 약속한 국가개혁을 다수 국민이 지지했는데, 그 방향과 다른 엉뚱한 곳을 지향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물론 청렴성도 중요하다. 청렴성이 결여되면 아무리 전문성이 뛰어나고 코드가 맞다 하더라도 정책 추진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문성, 코드, 청렴성 세 가지를 모두 갖춘 후보자를 찾기 어렵다는 데 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인사수석실 선임행정관을 지낸 필자의 경험에 비춰보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나 둘을 갖춘 사람은 있었지만 다 갖춘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기억된다.
그러면 어떡해야 할 것인가? 과거 정부가 썼던 한 방법은, 직위에 따라 전문성이 더 중요한 자리, 코드가 더 필요한 자리, 청렴성이 무엇보다 무게를 갖는 자리를 구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방청장처럼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직위는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찾고, 기관의 운영 방향을 확 바꿔 시대정신에 걸맞은 개혁이 필요한 자리는 코드가 맞는 인사를 찾아야 하며, 다른 사람의 청렴성을 재단하는 직위나 부패의 가능성이 높은 권력기관에는 남들보다 청렴성이 높은 사람을 앉히는 방법이다.
이런 분류에 따르면 우리 소중한 계란의 추억을 깨버린 식약처장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자리이기에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자리다. 약국 하나를 운영하면서 지역에서 정치 활동을 하던 분이 코드 때문에 임명되기에는 너무 무거운 자리인 거다. 인사가 만사다. 이 땅에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생명과 신체의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전문성, 코드, 그리고 청렴성의 조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대한민국이다.
박수영 아주대 초빙교수·전 경기도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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