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배가 고픈 사람이라면 김밥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천 원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먹을거리였던 김밥은 지난 해 2월 물가상승 압력을 견디지 못해 500원이나 올랐다. 천 원 한 장으로는 과자 한 봉지를 집는데도 찜찜하다. 800원 하는 새우깡을 빼고 나면 포카칩, 초코샌드 등은 이미 천원을 넘어선지 오래다.
천 원의 기부가 붐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지난 1997년 10월부터 KBS1를 통해 방송된 ‘사랑의 리퀘스트’다. 천 원의 자동응답전화(ARS) 한 통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프로는 보는 이들이 수화기를 들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때문에 천 원쯤이야 하는 맘에 눌러댔는데 전화요금이 너무 많이 나왔다며 하소연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뿌듯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의 전화요금 관련 에피소드가 연일 화제가 됐다.
천 원 짜리 한 장이 의외의 행복을 안겨다 주는 경우는 많다. 대표적으로 서울 세종문화회관이 지난 2007년 1월부터 매달 공연해 오고 있는 ‘천 원의 행복’을 들 수 있다. 입장료 천 원에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는 한편 객석 일부를 문화소외계층에게 공연관람기회를 선물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시민추천 프로젝트’를 통해 장애인과 다문화가정, 저소득층 아동단체에 제공하고 있다. 지난 5월까지 공연을 관람한 관객은 16만명에 달하고 이중 문화소외계층만도 2만 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달 28일과 29일 열리는 두 번의 공연은 ‘해설이 있는 세계음악여행’으로 노숙인, 쪽방촌 주민과 기초생활수급자, 자원봉사활동자, 소방관 등 975명이 선물받은 티켓으로 공연을 관람할 예정이다.
경기팝스앙상블도 지난 해 12월 기획공연으로 ‘천원의 행복’을 마련했다. 1시간30분 동안 펼쳐진 공연은 평소 경제적인 부담으로 공연을 접하지 못했던 관람객들이 입장료 천 원을 내고 캐롤을 들으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다. 지난 3월에는 성남시립교향악단이 천 원에 다양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획공연을 마련했다. 공연은 임평용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뮤지컬 가수 배해선과 대중가수 서유석, 성남시립국악단, 남성4중창단 비바보체 등이 뮤지컬 음악과 대중가요,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여 호평받았다.
안양문화재단 평촌아트홀도 지난 달 28일 자연과 어우러진 음악공연으로 ‘풀밭 음악회’ 를 열었다. 이 음악회 역시 안양문화예술재단이 ‘문화로 만드는 행복한 일상’을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 특히 천원의 관람료를 문화에서 소외되기 쉬운 어린이와 이웃들에게 예술교육, 공연관람 등 문화 나눔을 위해 쓴다는 계획이어서 훈훈함을 더한다.
천 원의 혜택은 청소년도 예외일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매월 넷째주 토요일, 청소년들이 천 원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관객의 날’을 지정했다. 청소년의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과 친화도를 높이고 예술 친화적 가족 여가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함께 실시하는 사업으로 티켓 가격의 80%(자부담금 천 원 포함)를 국가가, 20%를 참여 공연 단체가 부담한다. 만 24세 이하 청소년이면 단돈 천 원에 연극, 뮤지컬, 음악, 무용, 국악 등 다양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지난 5월 28일 첫 ‘관객의 날’에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그리스’, 연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등 97개 공연이 참가했다. 6월 ‘관객의 날’ 예매는 이미 1일 사랑티켓 홈페이지 (http://www.sati.or.kr)에서 시작됐다.
이제 비싸서 공연보기가 어렵다는 말은 게을러서 라는 핑계로 바꿔야 할 것 같다. 맘만 있으면 천 원짜리 한장으로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 물론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지다 보니 천 원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아님, 먹고 살기 어려운 형편에 무슨 공연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천 원으로 몇 십 배,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큰 가치의 행복을 살 수 있다면 한 번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천 원의 힘은 마음먹기에 따라 무지하게 커질 수 있다. 박정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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