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차다. 예년에 비해 빨리 찾아 온 한파에 서민들의 시름만 깊어가고 있다. 겨울은 없는 사람들에겐 여간 고약한 계절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더우면 그늘진 곳을 찾아 옷이라도 벗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추위에 얼어붙는 몸은 피할 곳이 없으면 낭패다.
점심약속이 없는 날이면 습관처럼 찾아가는 곳이 있다. 경기일보에서 걸어 채 3분이 안되는 곳에 따뜻한 마음이 있어 백만장자가 부럽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바로 녹색복지회(구 한길봉사회)가 운영하는 무료급식소다. 그곳에서 제공하는 점심 한 끼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적게는 하루 100명, 많은 경우 200명을 넘기도 한다. 통상적인 점심시간은 12시지만 이곳에서의 점심시간은 11시면 시작된다. 아침마저도 거른 노인들을 위한 배려에서다.
처음엔 점심 못 먹는 노인들이 이렇게 많은가 의아했다. 물론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노인들도 꽤 눈에 띈다. 며느리가 차려주는 점심이 부담스러워서 인 경우도 있고 홀로 사는 노인들은 혼자 먹는 게 싫어서라고 한다. 공통적인 건 모두 다 외로운 노인들이란 거다. 그들에겐 막 지은 밥과 국만으로도 훌륭한 한 끼가 된다. 또래 노인들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나누고 신세한탄도 늘어놓을 수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은 곳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요즘처럼 날씨가 춥거나 비라도 내릴라치면 걱정이 앞선다. 경로당 한편에 마련된 무료급식소는 너무나 비좁아 비바람을 피해 밥을 먹을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다. 날이 좋을 때는 인근 만석공원이나 급식소 한편에 자리를 잡으면 그만이지만 비라도 내리면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다. 식당 입구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추위에 떠는 노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안 좋다.
학생들에게 무료급식을 해준다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경기침체 여파로 지방자치단체마다 세수가 줄어 난린데 무상급식비까지 마련하려니 기타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가뜩이나 적은 복지예산을 무상급식에 쓰고 나면 정작 필요한 데는 쓰지 못한다는 거다.
경기도교육청은 내년 예산에서 무상급식비 조달을 위해 교육 관련 각종 시설 및 사업비 2천800억원을 삭감키로 했다. 그 중에는 기초학력 부진 학생 특별지도비도 포함됐다고 한다. 기초학력 부진 학생 특별지도는 교육 균등을 위한 학생복지사업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공짜밥 한 끼만 생각하고 학력이 부진한 학생의 미래는 생각지 않는 처사다. 안산시의 경우 초등학교 3~6학년에게 무상으로 급식을 제공하는 대신 기초수급 대상자와 차상위 계층 자녀를 대상으로 진행하던 방과후 축구·배구교실 등을 폐지키로 했다. 돈 내고 밥 먹을 수 있는 아이들까지 공짜 밥을 먹이려다 피해를 보는 건 오히려 저소득층 아이들인 것이다.
무료급식 대상이 전체 학생인 것도 아니다. 수원의 경우 초등학교 5~6학년이 대상이다. 공짜로 밥먹는 아이들이 기가 죽을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됐다는데 그러면 나머지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그리고 중·고등학생은 기가 죽어도 된다는 건지 도무지 앞뒤가 맞질 않는다.
얼마 전 염태영 수원시장이 녹색복지회를 다녀갔다고 한다. 열악한 상황을 보고는 비를 피할 수 있도록 가건물이라도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단다. 수원시라고 딱히 재정상태가 좋은 것도 아니어서 실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말인데 무상급식을 지자체별로 생색내듯 추진할 게 아니라 국가가 해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면 어떨까. 지금은 취약계층이 어떡하면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을지를 놓고 머리를 맞대도 부족할 때다.
박 정 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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