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우리 클 때와 달라!” 조상 대대로 전래된 말이다. ‘다르다’는 것은 생활문화의 차이다. 그 같은 세대 차이점은 곧 문화 발전의 격차다.
그런데 조선 말기까진 세대 격차, 즉 생활문화 발전의 속도가 지극히 완만하였다. 발전 속도가 상승 곡선을 긋기 시작한 것은 1884년(고종21년) 양반제 타파 등 서구 문물이 도입된 갑오혁신 이후다. 개화기가 절정을 이루면서 학교교육이 태동됐고 인간의 존엄성 가치가 추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60년대까지는 여전히 농업이 경제 구조의 주류를 형성하는 농경사회의 틀을 면치 못했다. 농업 경제와는 비교가 안되게 자본 회전이 빠르고 또한 투자 효과가 높은 산업사회에 들어선 것은 1970년대다. 고속성장의 산업사회에 이어, 지금은 1990년대에 시작한 정보화사회가 구가되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급변은 생활관, 가치관 심지어는 윤리관의 변화마저 수반했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 클 때와 다르다’는 것은 당연하다.
정보화사회의 세대 간 격차
지금 마흔 살 전후의 부부를 예로 들어 본다. 이들은 산업사회 시대에 성장하면서 농경사회서 자란 부모 밑에서 살았다. 그리고 이 부부가 둔 자녀는 현재 정보화사회에 살고 있다. 생각의 격차가 없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특히 지금은 불과 몇 해만으로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 할 만큼 정보화사회의 진행 속도가 발빠르다.
가령, 학생들 두발을 말하면 농경사회 적은 학교에서 시킨 대로 할 뿐, 감히 어길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산업사회에서는 두발을 어긴 학생이 간혹 있어 그 머리를 선생님이 가위로 잘라내도 아무 소리 못했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왜 자르느냐?”며 이의를 댄다. 인권을 말하기도 한다.
정보가 개방되다 못해 넘치는 정보화사회 들어 청소년들이 영악해진 이유다. 물론 정보의 홍수가 사물의 변별력 등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있다. 반면에 나쁜 것도 많다. 예컨대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청소년들이 안 본다고 여기면 오산이다. 가슴 노출은 예사고 이보다 더한 에로티시즘 영상물 투성이인 것을 못 본다고 여기면 착각이다.
문제는 교육이다. 성장환경이 판이하게 변화된 지금의 학생들에게 기성세대가 예전의 눈높이에 맞춰 가르치려 들면 잘 먹혀 들지 않는다. 현대 청소년의 특징인 강한 개성은 곧잘 따지기를 좋아한다. 부모나 스승이기 때문에 무조건 존경한다는 생각보다는, 부모다운 부모며 스승다운 스승을 요구한다.
요즘 교육계 일각에서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이나 학업성취도평가 거부 등은 이를 테면 자연주의 교육이다. 루소의 유명한 교육소설 ‘에밀’은 인위적 교육을 배격한 자연주의 교육의 극치로 인간 본성의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을 성선설로 본 것은 옳을지라도, 지금의 청소년 성장 환경은 그가 살았던 18세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 무렵의 인위적 교육이 본연의 인성으로 돌아가는 데 방해가 됐다면, 현대사회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이를 저해하는 환경적 유해 요소가 너무 많다.
청소년 눈높이 동행교육을
방임하는 교육이 아닌 동행하는 교육이 돼야 한다. 가르치는 선생님의 눈높이에 맞추는 동행이 아니고, 배우는 학생들 눈높이에 맞추는 동행교육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선 교원평가제가 또한 필요하다. 한데도 교원평가제를 한사코 반대하는 목소리가 요란하다. 평가 방법에 문제가 있으면 이에 제기하는 이의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교원평가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무사안일주의다. 도대체 학생들 일제고사도 못 보게 방임해 가며, 선생님들 철밥통이나 지키고자 한다면 공교육의 불신이 더욱 심각해진다. 미셸 리 미국 워싱턴 교육감과 워싱턴 교원노조가 학생들 성적을 기준으로 교원 성과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는 뉴스가 부럽다.
아울러 인성 도야를 생각해 본다. 청소년에게 과잉 접촉되는 정보화사회의 매스미디어를, 그렇다고 억지로 차단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접촉되는 과잉 정보를 자연스럽게 걸러주는 노력이 현대적 의미의 자연주의다. 공부를 잘하면 물론 좋지만, 좀 못 해도 개성을 살리면 유망하다. 공부도 잘 못 가르치고, 개성의 바탕인 인성 도야도 제대로 못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요컨대 이 시대의 부모는 물론이고, 선생님들은 요즘 아이들은 우리들 클 때와 어떻게 다른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뭘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임양은 본사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