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할머니(81)는 한달에 한번 압구정동에 간다. 경남 진주여고 11회 졸업생들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보고 싶은 얼굴을 못 보면 어쩌나”하고 가슴을 졸이지만 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 없는 법. 매년 한명 두명 떠나보내고 이젠 6명의 친구들만이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김 할머니는 남편 송두영 할아버지(84)와 지난해 7월 분당의 아파트 생활을 접고 수원 광교산 기슭에 위치한 유당마을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안면마비 증세가 오고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더이상 아파트에서 생활하기가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유당마을에 들어온지 채 1년이 안돼 김 할머니의 병세는 크게 좋아져 지금은 이웃의 또래 할머니들과 담소를 나누며, 제2의 노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 직원들도 친절하고 다들 자식같아. 아파트에서 살 때는 외부와 접촉이 없어서 무료했는데 여기선 비슷한 나이의 할머니들이 많아서 수다도 떨고 친해서 좋아. 마음도 편하고.”
김 할머니는 송 할아버지와 61년째 한 이불을 쓰고 있다. 슬하에 2남2녀를 둔 김 할머니는 부부 금실이 좋은 탓에 마흔둘의 나이에 늦둥이 아들을 봤다.
“그런 얘기는 쓰지마. 자식들이 보면 창피하잖아.” 할머니의 투정섞인 애교에 할아버지는 멋적은 듯 빙그레 웃는다.
남편인 송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휘문고를 졸업하고, 일본대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당시로선 진보적인 엘리트 중 한사람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중앙 정부와 지자체 등 공직에서 일했고, 모 기업 지사장을 지냈다.
“열심히 일하고, 근검·절약하며 소박하게 살아왔어. 4남매 대학교육시키고, 시집·장가 다 보냈어도 우리 두 내외 사는데는 아직까진 걱정없어.”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송 할아버지 부부는 “자식이 탈없이 잘 컸고 사회에서 제몫을 다하고 있다”고 자랑하면서도 “그래도 늘 자식 걱정”이라고 말했다.
송 할아버지는 4남매를 뒀지만 단 한번도 자식과 같이 산다거나 의지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막둥이를 장가 보낸이후 송 할아버지 부부는 당신들만의 편안하고 행복한 노후를 꾸려왔다.
유당마을로 입주한 것도 송 할아버지가 몸이 불편해질 것을 대비,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않기 위해 노후대책의 일환으로 10여년 전부터 점찍어 둔 것이다.
유당마을은 지난 88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실버타운으로 송 할아버지 부부는 보증금 9천800만원에 월 150만원을 내고, 가사·식사·문화·의료 ·재활 등 각종 서비스와 편의시설을 제공받고 있다.
“요즘은 고급 호텔식으로 더 비싼 곳도 있다고 하던데, 여기도 만만한 금액은 아니야. 왠만한 샐러리맨 한달치 봉급이니까. 그래도 늙어서 자식들에게 의지해 눈치보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 서로 불편할 필요있나. 각자의 삶이 있는데. 경제적 능력만 되면 추천해 주고 싶어.”
송 할아버지는 4남매가 요일을 정해놓고 돌아가며 찾아오고, 휴일이나 명절에는 손자·손녀들까지 온 가족이 다모인다고 했다.
‘삶의 노년을 구차하게 살지 않겠다’는 송 할아버지 부부의 당당한 모습이 아름답게 비춰졌다. /고영규기자 ygko@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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